한국영화가 아버지를 묘사하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무기력함. 우연치 않게 모두 송강호가 연기했지만, 이를테면 <효자동 이발사>와 <우아한 세계> <관상>에서의 아버지 상이 그러하다. 둘째 자상함. <7번방의 선물>과 최근에 개봉한 <소원>의 아버지들이다. 이 두 카테고리는 모두 부성애의 양면성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휴먼 드라마의 범주 안에 있다. 두 경우 모두 자식들을 위한 헌신을 전제로 하고, 시대의 무게에 짓눌려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해 쩔쩔 매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가운 아버지로 남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한국영화가 아버지를 다루는 마지막 방식은, 비록 주류영화가 자주 채택하지는 않지만, 난폭함이다. 아버지는 집안의 독재자로 군림한다. 이 경우에 아버지의 상대항은 주로 아들이다. 즉,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신의 율법을 강요하는 존재이다. 그런데 그 율법은 폭력적이다. 아들은 처음엔 여기에 순응하지만, 결과적으로 저항한다.
독립영화 <굿바이 보이>나 <계몽영화>에서의 아버지들은 모두 1980년대 전두환 정권기를 배경으로 묘사되는데, 이들은 당시의 국가 폭압을 고스란히 내면화한 존재들이다. 그들은 툭하면 폭력을 휘두르고 앞뒤가 맞지 않는 언행을 일삼는다. 따라서 이들 영화 속의 아버지들이 상징하는 바가 무엇인지 짐작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지난 주 개봉한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에서는 주인공의 아버지들이 다섯 명이나 등장한다. 비록 화이가 이들에게 유괴돼 키워졌다는 설정을 내세우곤 있지만, '아버지'라고 호명하는 차원을 넘어서 실질적으로 이들의 관계는 부자 관계다. 즉, 아버지들은 화이의 미래를 걱정한다. 그리고 화이의 장래에 대한 각자의 소신을 펼친다.
다섯 명의 아버지는, 범죄자라는 면에서 본질적으로 같은 영역 안에 있다. 그러나 노선은 다르다. 이들 각자가 보여주는 각기 다른 노선은, 이 시대의 아버지들이 보여주고 있는 여러 모습을 한꺼번에 보여주는 장치로 읽힌다. 하나의 측면으로 단순화할 수 없는, 완고함과 엄격함과 자상함을 동시에 갖춘 아버지 상 말이다.
화이는 이들에 의해 길러졌지만 저항의 길을 선택한다. 영화는 화이의 선택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친부 살해'라는 강력한 동기를 끌어 오지만, 사실 이것은 대중영화적 선택일 뿐, 감독 장준환이 집중하려고 하는 것은, 화이의 실질적인 아버지인 석태(김윤석)와 화이 사이의 충돌이다.
석태는 말한다. "괴물을 보고 싶지 않으면 괴물이 되면 돼!" 이것은 준엄한 아버지의 가르침이다. 괴물들과 싸워 이기기 위해 석태가 선택한 삶의 방식, 즉 폭력이야말로 화이에게도 온전히 전수하려고 하는 아버지의 율법, 시스템의 명령, 지배 이데올로기이다. 석태는 단지 화이를 이용하고 싶었던 게 아니다. 화이는 정말 석태의 아들이다! 따라서 화이는 석태의 유전자를 고스란히 이어받아야 하는 것이다.
석태는 한국적 근대화의 부수적 속성, 즉 폭력의 메신저이다. 괴물과 싸워 이기기 위해 스스로 괴물이 된 자들의 세상. 그리하여 그 괴물의 세상을 이어가고자 하는 욕망. 장준환이 영화 <화이>라는 우화를 통해 보여주는 이 시대의 소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