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들이 뽐내는 샤넬과 프라다를 흠모하고, 그들의 집에 몰래 들어가 고가의 명품 패션들을 훔친다. 그걸 입고 클럽에 놀러간다. 그리고 인증샷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린다.
영화 <블링 링>이 담아낸 10대 소녀들의 모습이다. 극단적이라고? 미국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일이다. 이들 가운데 리더 격인 레베카는 한국계 미국인이다.
<대부>의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딸이자, 실제로 어린 시절 <대부> 시리즈에 출연하기도 했던 소피아 코폴라가 감독이다. 코폴라는 이 사건을 취재 기록한 잡지 베니티 페어의 기사를 바탕으로 명품과 과시 욕망에 휘둘린 10대들의 일탈 사건을 재연한다. 그리고 그들의 과감하다기보다 무모하기 이를 데 없는 일탈 행각이 과연 어디에서 비롯됐는지를 탐문한다.
영화에 따르면, 진범은 미디어와 이른바 명품 산업이 스타라는 아이콘을 통해 부추기는 '스타일'이라는 물신(物神)이다. 그리고 이 철딱서니 없는 10대들은 그 물신의 열광적인 숭배자들인 셈이다. 70년대 10대 소녀들의 일탈이 록그룹을 쫓아다니는 그루피 문화로 표현됐다면, 코폴라는 샤넬과 루이비똥을 숭앙하는 21세기 '스타일 그루피'의 집착과 망상을 포착한다.
상징적인 장면이 있다. 두 명의 소녀에게 홈스쿨링을 하는 장면에서 이들의 어머니이자 교사는 안젤리나 졸리의 사진을 보여주며 그녀가 가진 인성적 미덕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두 친구는 각각 대답한다. "남편!" "몸매!"
이들이 절도 행각의 결과로 얻은 전리품들을 태연하게 입은 채 인증샷으로 남기는 장면에선, 또 하나의 동력으로써의 나르시즘 기제, 즉 SNS라는 미디어에 대한 코폴라의 서늘한 논평이 얹힌다.
재미 있는 것은 실제 사건의 피해자인 패리스 힐튼이 자신의 집을 촬영 장소로 공개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을 일으킨 10대 가운데 두 명은 범죄 이후 오히려 스타가 돼 TV 리얼리티 쇼에 출연했다고 한다. 미국이니 있을 법한 얘기일지도 모르지만 우리로서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어쩌면 이 가여운 소녀들은 미디어가 만들어낸 사생아들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단면을 아주 날카롭게 잘라 보여주는 이 영화로부터 묵직한 씁쓸함을 얻고 극장문을 나선다면, 영화를 제대로 보신 것이다. 혹시나 패리스 힐튼의 옷방과 보석을 훔쳐본 쾌감을 얻었다면, 영화를 한참 오독하신 거고. 9월 5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