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독피' 맵고 서늘한 풍자

영화 이야기 2013. 9. 2. 09:32 Posted by cinemAgora



지난 금요일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한 김곡, 김선 감독의 독립 영화 <방독피>에는 박근혜를 노골적으로 조롱하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 속에서는 주성근이라는 이름의 서울시장 후보로 캐릭터화돼 있지만, 선거 유세 도중에 괴한의 습격을 받아 뺨에 상처를 입고 밴드를 붙이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게 누굴 풍자하고 있는지는 금세 알 수 있다. 

아무튼 인상적인 장면은, 참모들이 선거 전략을 논의하는 대목이다. 한 참모가 선거 캐치프레이즈로 "개혁"이라는 말을 쓰자고 하자, 다른 참모들이 "그건 야당이나 쓰는 말"이라고 반발한다. 개혁이라는 말을 넣느냐 마느냐를 가지고 설왕설래가 오가는 와중에 참모들은 결국 "의원님의 생각은 어떠십니까?"라고 묻는다. 그러자 주성근은 말한다. 

"을사조약의 슬픔을 아십니까? 을사조약으로 우리나라는 국권을 상실했지만, 일본은 국론의 분열 등 더 큰 짐을 안아야 했지요. 정치는....고슴도치 사랑이에요. 멀리 있으면 가까이 가고 싶고, 가까이 가면....아픈 거예요."

참모들은 이 말에 한참동안 어리둥절 하다가, "국민과의 소통이 중요하다는 말씀이신 것 같습니다."라고 얼버무린다. 박근혜 유체이탈화법에 대한 조롱이다. 

아무튼 꽤 많은 상징과 은유로 가득차 있는 듯 보이는 이 영화에 대해 두 쌍둥이 감독은 "오히려 굉장히 직유적인 영화"라고 답했다. 맞는 말이다. 이 영화가 무엇을 풍자하고 조롱하고 있는지는 한국의 정치 지형을 조금만 관심 있게 본 사람이라면 금세 눈치챌 수 있다. 다만, 이 영화는 정치 권력에 대한 비판적 조롱을 넘어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김선 감독은 <방독피>를 일컬어 "모순에 대한 영화, 적이 없어도 적을 만들고야 마는 데 대한 영화"라고 설명했다. 감독의 설명 그대로, 영화 속의 한 미군은 이렇게 절규한다. "나는 용서 받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녀를 죽였어요." 죽여서 용서 받는 게 아니라 용서 받기 위해 죽이는 것. 전과 후, 나와 타자가 뒤죽박죽이 돼 있는 한국사회에 대한 <방독피>의 냉소다. 

이것은 요즘도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내란 음모를 만들어야 존재 증명이 되는 국정원과 유신의 자손들. 그 자신이 공포이면서도 공포의 대상을 창조하지 않으면 안되는 모순. 이렇게 해서 주체와 타자는 화간한다. 타자와 주체는 겉으로는 대립적으로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상호 공생적 관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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