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열차>에 한번 더 딴죽 걸겠다. 영화가 아니라 마케팅 관련한 것이다. 이 영화는 개봉 전 167개국에 해외 선판매됐다고, 배급사 CJ E&M이 밝혔다. 그렇게 해서 200억 원 가까운 수익을 거둬들였다고 한다. 많은 언론들이 이 발표를 그대로 실었다. 그런데 여기서 나는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2011년 현재 UN 회원국수는 193개 국이다. UN에 가입하지 않은 나라를 통틀어도 지구상의 국가수는 230여 개다. 그런데 <설국열차>가 167개국에 판매됐다고? 그렇다면 전세계 국가의 70%가 넘는 곳에서 이 영화가 상영된다는 말씀 되겠다.
선뜻 수긍이 되시나? 나는 안된다. 웬만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도 그 많은 나라에 수출되지 않는다. <아바타>와 <아이언맨 3>는 총 70여 개 나라에서 개봉했다. 세계 최대 필름마켓인 칸영화제의 2013년 참가국수는 108개이다. 직배를 제외한 대개의 영화 수출입은 거의 이곳에서 이뤄진다. 그렇다면 167개 국이라는 숫자는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결론적으로, CJ E&M이 167개 나라와 체결한 계약서를 다 보여주지 않는 이상, 이 숫자는 믿거나 말거나다. CJ에 따르면 북미 등 영어권 국가의 배급은 미국의 와인스타인 컴퍼니에게, 프랑스와 남유럽, 남미 등의 배급권은 프랑스의 와일드사이드에게 팔았다고 한다. 그러니까 정확하게 말해 개별 국가와 수출 계약을 맺은 게 아니라 굵직한 권역별로 큰 회사들에게 배급을 맡겼다는 얘기다. 그들 배급사들이 167개 나라에 배급을 하게 될지 말게 될지는, 그야말로 그들 마음이고 각 나라의 시장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다시 의문. 도대체 167개 나라라는 숫자는 무엇에 근거한 것일까? 혹시 그들 배급사들이 영화를 수출했던 실적이 있는 나라를 모두 합친 숫자는 아닌가? 그러니 167개 나라에 수출될 수 있다는 희망(?)을 '수출 됐다'고 기정 사실화한 건 아니냔 얘기다.
설령 167개 나라에 팔렸다는 발표를 그대로 믿는다고 쳐도, 그 수출 계약을 통해 벌어들인 돈이 200억 원 가까이 된다고 하니, 한 개 나라에 평균 1억 2천 만 원 정도에 팔렸다는 산술적 계산이 나온다. 1억 2천 만 원. 한국에서 조금 유명한 감독의 유럽산 예술 영화를 수입하는 가격이다.
사안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긍하기 어려운 의문과, 초라한 산수가 등장한다. 그럼에도 167개 나라, 200억 원이라는 숫자만이 둥둥 떠 다니며 <설국열차>가 또 하나의 거대 한류 상품으로 우뚝 선 듯한 착시가 벌어진다. 당연하게도 마케팅이 노리는 지점이 바로 그것이다. "자, 이 자랑스러운 영화를 당신은 안보겠습니까?"
영화 데이터베이스 사이트인 IMDB에 따르면, <설국열차>의 개봉을 확정한 나라는 현재 7개 나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