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를 보는 법

영화 이야기 2013. 8. 13. 16:06 Posted by cinemAgora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박스오피스 페이지에 접속하면, 박스오피스 통계와 별도로 '다양성 영화 박스오피스'라는 게 있습니다. 일전에 제가 한국 극장가가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로 나뉜다고 언급했던 적이 있죠. 메이저리그 박스오피스로는 도무지 그 흥행 통계를 알 수 없는 코너에 박혀 있는 영화들, 그 영화들을 따로 떼어 자기들끼리 순위를 매긴 것이죠. 참 서글픈 현실입니다만, 이렇게 해서라도 다양성 영화의 존재 확인을 해야 하는 절박함만은 이해 영역 안에 있습니다. 

어쨌든, 그 '다양성 영화 박스오피스'의 지난 주말 순위를 잠깐 보시죠. 

1위 마지막 4중주 
2위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 
3위 페인리스
4위 까밀 리와인드 
5위 빅 픽처
6위 길위에서 
7위 마스터
8위 사랑과 영혼 
9위 페이퍼보이: 사형수의 편지
10위 인 더 하우스

1위부터 10위까지의 영화들 가운데 한국영화는 6위에 오른 <길 위에서> 단 한 편입니다. 지금 극장가에 내걸린 한국 다양성 영화만 해도 <링><죽지않아><그녀의 연기><힘내세요, 병헌씨> 등 부지기수인데, 그 가운데 딱 한 편만 10위권 안에 든 것입니다. 반면, '그냥 박스오피스'는 절반 이상이 한국영화입니다. 그냥 박스오피스를 보면서 "와, 한국영화가 진짜 잘나가고 있구나" 생각하는 건 현실을 절반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정확하게 얘기해 한국 상업영화가 잘 나가고 있는 것이고, 그에 반해 한국 독립영화는 거의 완전히 찬반 중의 찬밥 신세입니다. 

다양성 영화 진영에서 외국영화가 그나마 우월한 위치를 점하는 데는 여러 사정이 있습니다. 일단 숱한 해외 영화제 등을 통해 작품성이 검증된 영화만 수입되기 때문에 관객들의 만족도도 외화쪽이 상대적으로 높은 게 사실입니다. 어쩔 수 없이 저예산으로 제작되는 한국 독립영화들은 그에 비하면 표현도 다소 거칠고, 또 공급 물량이 많습니다. 즉, 이들에겐 개봉하는 것 자체가 감지덕지인 상황이기 때문에 예술영화전용관이라는 한정된 상영 공간을 자기들끼리만 나눠 가져야 하는 현실입니다. 

그래서 한국 독립영화는, 한국 상업 영화들과 다양성 영화 진영의 외화들 사이에 옴짝달싹 못하게 끼어 있는 구조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죠. 물론 <지슬>처럼 10만 명을 넘어서는 기적 같은 경우가 가끔 일어나긴 합니다만, 대개의 한국 독립영화는 많아 봤자 1만 명, 대개 1천 명 안팎의 관객을 모으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집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한국 독립영화를 봐달라고 읍소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일단 작품으로 승부를 걸어야지요. 그런데, 저는 관객들 역시 일반 상업영화와는 다른 기준으로 독립영화를 감상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세계와 현실에 대한 창작자의 추상적 관념을 캐릭터와 사건이라는 구체성으로 변환한 결과물입니다. 따라서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리얼리티의 왜곡 현상이 벌어집니다. 그런데 돈이 많이 들어간 영화는, 그 리얼리티의 왜곡이라는 문제를 '스펙터클'로 가릴 수 있습니다. 스펙터클의 압도성이 관객이 영화가 왜곡하거나 과장한 현실을, 영화 안의 내부적 논리 안에서 현실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것이죠. 

그러나 독립영화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스펙터클을 만들어낼 돈이 없기 때문에 영화적 왜곡과 과장이 날 것 그대로 보여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적지 않은 관객들이 이 부분을 불편해 합니다. 그래서 "당신의 작품은 리얼리티가 떨어진다"는 지적을 자주 합니다. 사실, 그러한 지적은 어느 정도는 독립영화 제작 환경에 대한 몰이해에서 나온 것입니다. 

우리는 유기농 채소를 먹을 때 약간 상해 있거나 모래가 조금 끼어 있어도 흔쾌합니다. 그것이 다른 채소와 달리 농약을 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거친 것이라는 데 동의하기 때문이죠. 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업영화가 기성복이라면, 독립영화는 수공예품입니다. 거칠죠. 하지만 여기에는 관객에게 아부하거나 영합하기 위한 장치들이 그만큼 적습니다. 거친 대신 건강에 좋습니다. 우리 사회에 대한 좀더 직설적인 언어가 담겨 있습니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장고> 같은 영화를 볼 때, 혹은 왕가위 감독의 <일대종사> 같은 영화를 볼 때, 우리는 서부극과 무협이라는 장르에 대한 이해 위에서 온전히 이들 영화를 즐길 수 있습니다. 서부극과 무협을 한번도 접해 보지 않은 이들이 저들 영화를 본다면 "이거 뭥미?" 할 것입니다. 관객의 태도와 준비도 중요한 것은, 영화가 기본적으로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ty)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앞서 만들어진 숱한 영화들이 후행 영화들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죠. 오마주는 '상호텍스트성'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약간 아전인수이긴 해도, 이 상호텍스트성을 독립영화에 적용한다면, 그것은 창작자의 문제 의식과 제작 환경의 관계라고, 저는 봅니다. 그것을 이해하고 영화를 본다면, 영화가 달리 보일 것입니다. 한국 독립영화는 보는 방법이 따로 있습니다. 그 보는 방법을 알았을 때, 진짜 유기농의 미덕이 몸 안으로 들어옴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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