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다시피 <설국열차>는 제작비 400억 원의 영화입니다. 반면, <더 테러 라이브>는 35억 원으로 비교적 저렴(?)하게 만들어진 작품이죠. 제작비 차이를 감안하면, 산술적으로 <설국열차>의 흥행 스코어가 <더 테러 라이브>의 열 배는 돼야 논리적으로 맞습니다. 해외 선판매 등을 감안하더라도 5배 이상, 아무리 짜게 잡아도 두 배 이상의 흥행 성적을 내는 게 정상이겠죠.
그러나 어제 하루 동안의 스코어를 볼까요? <설국열차>가 41만 명, <더 테러 라이브>가 21만 명으로 시작됐습니다. 누적 관객수는 43만 명 대 34만 명입니다. 게다가 개봉 2주차엔 흥행세가 뒤집어질지도 모른다는 예상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최근 이른바 글로벌 시장을 노리고 계획되는 한국영화의 경우, 국적성을 어느 정도 포기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앞서 <마이웨이>가 한중일 배우들을 캐스팅해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삼았고, 이미 실패로 낙점된 <미스터 고>는 중국 소녀를 주인공으로 캐스팅했습니다. <설국열차>는 국적 자체가 중요하지 않은 신빙하기의 인류를 모두 주인공으로 삼습니다. 하지만 언어는 영어와 한국어입니다.
이렇게 되면 '일상성'의 증발 현상이 벌어집니다. 뭔 소리인고 하니, 관객들이 영화 속의 설정이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동의 속에서 감정이입을 해야 하는데 그 근거를 찾지 못한다는 얘기입니다.
<괴물>이 흥행한 이유는 뭘까요? 간단히 말해, 괴수가 우리의 일상적 공간인 한강에서 출몰했기 때문입니다. <해운대>는 메가 쓰나미가 해운대라는 익숙한 공간에 들이닥칩니다. 한국에서 빅히트를 기록한 거의 모든 영화는 관객들의 주변적 공간에서 영화적 볼거리를 뽑아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른바 글로벌 프로젝트라는 미명으로 추진되는 많은 거대규모 영화들이, 바로 이걸 놓치고 가는 우를 범하고 있습니다. 관객들은 아무리 제작비가 많이 투입된 영화들이라 할지라도, 한국영화에선 "나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합니다. 스펙터클을 소비하는 할리우드 영화와는 다른 것을 한국영화에 기대한다는 얘기이지요.
이런 연유로 저는 <더 테러 라이브>가 <설국열차>를 이길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더 테러 라이브>는 우리의 이야기(양극화 사회의 초상과 방송의 선정성)를 우리의 일상의 공간에서 일어난 사건(마포대교 테러)을 통해 아주 촘촘하고도 짜임새 있게 풀어 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전에 한 제작자께서 저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제작비가 많이 들어간 영화가 흥행에 성공을 해줘야 이 판의 플레이어들이 프로라는 게 입증된다"고요. 대규모 자본을 투입한 투자 배급사의 입김 등 여러 변수들을 감안해야 겠지만, 제가 보기엔, 안타깝게도 한국의 많은 영화 제작자들은 아직 프로가 아닌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