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도 규모의 경제라는 게 있습니다. 큰 영화일수록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지요. 실제 통계적으로도 100억 이상의 대규모 영화가 흥행 타율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납니다. 영화는 대표적인 고위험 산업인데,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걸까요?
이걸 설명하는 게 이른바 "미디어 하이프(Media hype)"라는 말입니다. 미디어의 띄워주기 현상을 일컫는 말이지요.
제작비가 많이 투여된 영화일 수록 광고량이 엄청납니다. 그 광고 세례에 미디어 종사자들이 예외가 될 리 없습니다. 더 많이 노출된 영화에 더 많은 관심을 갖기 마련입니다. 꼭 그렇지 않더라도, 미디어 종사자들은 더 많은 관객들이 그 영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예측하고, 그 영화에 자연스럽게 주목하게 됩니다. 미디어의 주목이 관객들의 관심과 기대를 유발하고, 만약 영화가 관객들의 기대치를 뒷받침할 요소를 함께 가지고 있을 경우, 미디어 하이프 효과는 폭발력을 갖습니다.
오늘 개봉하는 <설국열차>가 무려 60% 이상의 예매율을 기록하며 엄청난 기대치를 증명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400억 원 이상의 제작비, 배급사 CJ의 대규모 마케팅 물량 공세, 봉준호라는 브랜드 파워, 이런 게 맞물리면서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이 영화에 대한 (조장된) 기대를 내면화합니다.
월요일에 이 영화의 특별 시사가 있었습니다. CGV 영등포 전관을 통틀어서 진행된 모양입니다. 이곳에 다녀온 한 영화 감독을 만났는데, 그가 말하더군요. "엄청난 위화감을 느꼈다"고요. 그리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이 행사를 할 돈으로 독립영화 몇 편은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설국열차>는 규모의 경제로 달려가야 하는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의 숙명을 가진 영화이니까요. 거기서 손을 번쩍 치켜드는 봉준호는, 그의 히트작 <괴물> 때 칸영화제 마켓 시사 현장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 흥행 서사의 승리자임을 암시하는 이미지 전력의 일환으로 보입니다.
아무튼 나는 <설국열차>를 "관념적 진보의 똥폼" 혹은 "도끼질이 나오는 동화"라고 규정합니다. 그건 대규모 자본과 합작한 작가의 숙명일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더군요. 여하튼 앞서 말한 감독이 지적한 바대로, 봉준호가 전성기의 감독들이 쉽게 빠지는 오류, 즉 시련 속에서 얻는 통찰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는 걸, 이 영화는 증명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오늘 개봉하는 이 영화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흔쾌히 즐길 수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그리고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어떤 유효한 문화적 자극을 주게 될지도요. 그저, 아! 봉준호가 에드 해리스와 틸다 스윈턴을 캐스팅했구나, 하는 데 그치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