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가 추천하면 지루하다?

영화 이야기 2013. 7. 11. 21:42 Posted by cinemAgora

많은 사람들이 평론가들이 추천하는 영화는 지루하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루하다"는 건 객관적 용어가 아니죠. 정확하게 말해 "내가 지루하게 느낀다"고 말해야 맞을 겁니다. 왜냐면 똑같은 영화를 전혀 지루하지 않게 즐기는 관객들도 분명히 존재하니까요. 

그렇다면, 왜 이런 편견이 생긴 걸까요? 저는 영화를 "재미 있다"와 "재미 없다"라는 이분법으로 나누는 습관이 만든, 그러니까 문화적 편식이 만들어낸 고정 관념이라고 봅니다. 그러다 보니까 뭔가 "다른" 영화를 보면 낯설게 느껴지고, 그 낯선 느낌의 정체를 "지루하다"라는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지요. 

다른 평론가들은 어떨지 몰라도, 저는 더 많은 관객들이 더 다양한 영화를 통해 더 깊고 넓은 사유의 기회를 얻기를 희망합니다. 그러다 보면, 언제나 거기서 거기인 뻔한 플롯의 영화보다는, 뭔가 새로운 시도를 선보이는 영화, 관객들이 사유할 여지를 넉넉하게 남겨두는 영화를 선호하게 되죠. 그런 영화야말로, 관객을 능동적 사유의 주체로 존중해주는 영화들이니까요. 그런 영화들은 관람이 끝난 뒤 더 많은 토론을 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한마디로 대화를 풍성하게 만드는 영화들이죠. 

이 대목에서 우스개 한마디 하자면, 얼마전에 트위터에서 제가 영화를 요즘 젊은이들의 표현을 좇아 "헐, 쩐다, 대박" 이렇게 세 개의 범주로 평가하면 어떻겠냐고 했더니, 많은 분들이 "대환영"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실제로 어떤 영화를 보고 "쩐다"라고 썼어요. 그랬더니, 이런 멘션이 오더군요. "좋다는 얘기에요, 나쁘다는 얘기에요?"

영화가 단순해지면서 언어도 단순해지고, 그 단순한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의미조차 지극히 모호해진, 상징적인 에피소드입니다. 좋은 영화는 우리의 사유를 풍성하게 해줄 뿐더러 그 사유를 끄집어내 표현할 수 있는 언어도 풍성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직업적으로 영화를 보고 해독하는 이들이 추천하는 영화는, 한번쯤은 재미 있다와 없다의 이분법에서 벗어나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이게 평론가의 권위를 주창하려는 게 아니라는 건, 웬만한 독해력을 가진 분이라면 다 아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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