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왕 좀비 영화 얘기가 나온 김에 조지 로메로의 또 하나의 좀비 영화 <시체들의 새벽>(1978)을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1968)이 좀비의 원형을 제시한 영화라면, <시체들의 새벽>은 좀비를 영화적 소재로 정착시킨 작품이라고 평가 받고 있습니다. 게다가 좀비의 상징성이라는 측면에서도 굉장히 곱씹을만한 부분이 많은 영화입니다. 조지 로메로는 불과 65만 달러의 저렴한 제작비를 들여 다분히 문명 비판적인 호러 영화를 창조해냈고, 이 호러 영화 걸작은 나중에 잭 스나이더가 <새벽의 저주>라는 작품으로 리메이크하기도 했습니다. 

<시체들의 새벽>의 기본 설정은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과 비슷합니다. 세상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좀비들이 창궐하고, 방송국은 특보를 통해 대피소를 자막으로 내보냅니다. 방송국 프로듀서로 일하는 여주인공은, 이미 대부분의 대피소가 좀비들에 의해 장악된 상태라 자막을 빼 버립니다. 그러자 그의 상사가 소리치죠. "자막을 계속 내보내. 그래야 사람들이 계속 TV를 볼거 아냐!" 공포를 판매하는 미디어에 대한 소름끼치는 통찰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쨌든 여주인공과 그의 남자 친구를 포함해 네 명의 사람들이 헬기를 타고 북쪽으로 피신을 갑니다. 그 가운데 두 명은 경찰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피신 중에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대형 쇼핑몰에 당도합니다. 물론 쇼핑몰도 좀비들에 의해 장악돼 있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이 자들, 쇼핑몰의 엄청난 상품들을 보고는 눈이 뒤집힙니다. 급기야 아예 여기서 당분간 정착하기로 결심합니다. 임신한 여자 친구와 동행중인 남친은 말합니다. "이곳은 정말 좋은 곳이야. 여기가 제일 안전해." 똑같이 좀비들에 의해 장악된 곳인데, 왜 그는 여기가 제일 안전하다고 믿을까요? 어쨌든 아무도 지키지 않는 이곳에서 그들은 마음껏 상품들의 천국에서 뛰고 놉니다. 다만, 유일한 걸림돌인 좀비들만 제거하면 됩니다. 결국 쇼핑몰 내의 좀비 소탕 작전에 나서고, 밖에 있는 좀비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쇼핑몰 입구를 대형 트럭으로 폐쇄하는 데 성공하죠. 

하지만, 진짜 적은 좀비가 아니었습니다. 인근 깡패들이 쇼핑몰을 노리고 쳐들어 옵니다. 이제 그들은 좀비가 아닌 동료 인간들과 주인 없는 쇼핑몰의 소유권을 놓고 싸워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립니다. 

<시체들의 새벽>은 영화 내내 쇼핑몰을 배경으로 한 사투를 펼쳐 놓고 있습니다. 쇼핑몰이 현대 소비자본주의의 물신성을 상징한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겠죠. 좀비라는 공동의 적 앞에서도 '소유욕'에 휘둘려 대립해야 하는 인간들은, 어쩌면 좀비들보다 더 잔인한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물신에 인간성을 저당 잡혀 버린 현대인의 초상을 좀비라는 거울을 통해 비추고 있는 작품이라고 보는 게 타당할 것입니다.

영화속의 주인공은 말합니다. "할아버지가 말씀하셨지. 지옥에 더 이상 여유가 없으면 시체들이 땅위를 걷는다고.(
When there's no more room in hell, the dead will walk the Earth.)" 조지 로메로의 눈에는 쇼핑몰이 지옥으로 보였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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