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의 오류

영화 이야기 2013. 6. 30. 16:34 Posted by cinemAgora

통계학 전공자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오늘날의 통계는 특정 주체의 필요에 따라 왜곡 해석될 여지가 너무 많다. 조사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데이터 수집 주체의 필요가 무엇이냐에 따라 통계 수치는 취사 선택되고, 쉽게 bias(편견)가 개입된다. 선거 때마다 보여지는 각종 여론 조사 결과의 부정확성이 그걸 입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계는 여전히 위력적인 힘을 발휘한다.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한 가장 '객관적인 근거'로 그 이상의 것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객관성이 결여됐을 때, 그것은 가설을 근거로 한 주장에 그칠 공산이 크다는 것도 나름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앞서 말한 이유로, 통계 역시 오류가 있고, 편견이 개입된다. 통계를 참고하되, 통계를 판단의 전적인 근거로 삼는 오류에 빠지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한국 극장가의 스크린 독과점 문제와 관련해, "사실상 특정 영화의 스크린 점유율이 40%를 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는 요지의 통계를 누군가가 제시해 유심히 살펴봤다. 그러니까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서 제시되는 스크린수는 교차 상영한 스크린을 모두 합한 수치이므로, 그게 60%, 70%의 점유율을 보인다 할지라도 실제 수치는 그보다 낮다는 얘기다. 이를테면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전체 대비 스크린 점유율은 64%였지만, 단 1회라도 상영한 스크린을 포함한 수치를 전체 스크린으로 봤을 때의 점유율은 33% 정도라는 것이다. 

숫자만을 놓고 봤을 때, 맞는 말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함정이 있다. 한 스크린에서 두 편 이상의 영화를 교차 상영 하는 경우, 이를테면 <월드워 Z>와 <로마 위드 러브>를 CGV 상암 5관에서 교차 상영한다고 가정했을 때, 어떤 영화에 더 많은 상영횟수를 제공하고 더 유리한 시간대에 편성할 것인지는 안봐도 뻔한 상황이다. 

게다가 스크린 독과점 상황을 더 실체에 가깝게 분별하기 위해선 상영횟수 분석을 해야 한다. 앞서의 통계에선 당연히 그 부분은 빠져 있다. 1,000 개 이상의 스크린을 확보한 영화들이 상영횟수 점유율이 40%를 훌쩍 넘긴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좌석수 점유율을 따진다면 수치는 그보다 더 올라갈 게 분명하다. 대개 스크린수 점유율이 높은 영화일수록 더 큰 관에 배정되기 때문이다.) 스크린 독과점이라고 비쳐질 수 있는 근거는 통계에서 슬쩍 빠진 것이다. 

그러니 그 통계에는 (당연하게도) 배급업자와 상영업자의 이해 관계가 슬쩍 스며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통계 수치가 그토록 중요하다면, 왜 관객들을 상대로 체감 다양성을 조사하는 통계는 시도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이를테면 이런 여론조사 말이다. 

"극장에 와서 보고 싶은 영화를 항상 골라 보는 편입니까?" 
"보고 싶었는데 시간이 안맞아 못본 경우를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볼 게 그 영화밖에 없어서 봤다가 실망한 경우가 있습니까?"

스크린 독과점 규제를 무슨 영화산업의 망조날 일로 바라보는 시각이 여전한 이상, 누군가는 이런 통계를 결코 보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이익을 대변해야 먹고 살 수 있는 지식 장사꾼들도 결코 시도하지 않을테고 말이다. 

여전히 분명한 것은, 영화는 문화이고, 영화산업은 문화 산업이라는 것이다. 프랑스 애들은 통계를 몰라서 특정 영화의 독과점을 견제하고, 미국 메이저 스튜디오 애들은 통계를 몰라서 20% 이상의 스크린 점유율을 확보하지 않는 것일까? 결국 관건은 관점이고 누구의 입장에 서 있느냐다. 독점이냐, 다양성이냐. 영화 비즈니스의 수익이냐, 관객의 접근권이냐.


한국과 미국의 상영횟수 점유율 비교


한국

(최근 스크린 1,000개 이상을 점유한 주요 영화들의 개봉 첫주말 상영횟수 점유율)

<은밀하게 위대하게> 18,853회 / 총 41,820회 점유율 45.08%
<아이언맨 3> 20,795회 / 총 39,844회 점유율 52.19%
<트랜스포머 3> 20,773회 / 총 33,770회 점유율 61.51%

*출처: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미국

<몬스터 대학> 100,600회 / 총 540,813회 점유율 18.60%
<아이언맨 3> 163,400회 / 총 523,749회 점유율 31.19%
<트랜스포머 3> 104,100회 / 총 560,191회 점유율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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