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이웃이 사라졌다. 주거와 삶, 교육과 문화를 함께 나누는, 삶의 터전으로서의 마을 공동체는, 말하자면 과거의 환상이 됐다.
그러나 여전히 현재인 곳이 있다.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서울 마포구의 성미산 마을이다. 벌써 20년이 다 되어가는 이곳의 주민들은 공동 육아를 하고, 축제를 함께 하고, 마을의 제반 의제를 회의를 통해 결정한다. 서로에게 별명을 붙여 부른다. 이 영화의 강석필 감독은 "맥가이버"로 불리고, 성미산 마을 주민이자 배우인 정인기 씨의 별명은 "도깨비"다.
가장 성공적인 도시 공동체로 인정 받은 이곳이 최근 보수 세력에 의해 "종북의 온상지"로 불린 것은, 이들이 자본의 논리에 의한 파편화된 삶을 거부하고, 나누고 함께 하는 다른 삶의 가능성을 끊임 없이 탐색하고 실천하기 때문이다. 그게 불온하게 보였다는 건 이 나라의 꼴통 보수들이 꿈꾸는 세상이 얼마나 참혹한 것인지를 역설적으로 짐작케 한다.
다큐멘터리 <춤추는 숲>은 바로 이 성미산 마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성미산 마을은 해발 60미터가 조금 넘는 작은 뒷산을 놀이터 삼아, 숨막히는 도시 안에서나마 아이들의 생태적 삶을 추구하는 부모들이 삼삼 오오 모여 만든 터전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는 개발이라는 괴물은 이곳을 비껴가지 않는다. 서울시가 성미산 일부를 학교 부지로 승인하면서 공사를 강행하려는 사학재단과, 이들에 맞서 성미산을 지키려는 마을 사람들의 치열한 사투가 펼쳐진다.
다큐멘터리는 이 처절한 저항의 몸부림을 카메라에 담으면서도, 또 한편으로 마을 사람들이 100인 합창단을 구성해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도 함께 담아내고 있다. 주민들은 산을 파내는 포크레인 앞에서, 윙윙 거리는 전기톱에 맞서 나무를 껴안으며 울부짖는다. 그 나무 하나가 마치 자신의 자식이라도 되듯 말이다. 그러나 합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의 주민들은 유토피아의 사람들처럼 활짝 웃는다. 이 두 개의 현장은 대비적이지만 맞닿아 있다. 즉, 공동의 적에 맞서 함께 싸우는 것과 함께 즐거움을 나누는 것이 공동체의 본질이자 진수임을 웅변하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영화 말미에 우뚝 서는 장승처럼 성미산 마을을 굳건히 지키는 이들의 영혼인 것이다.
승자독식과 개발 지상주의의 논리가 횡행하는 이 시대에 이런 독립영화가 관객들과 광범위한 접점을 만들어내는 것은, 일단 구조적으로 불가능해졌다. 다큐멘터리인만큼 사정은 더 열악하다. 하지만, 마을 공동체의 역사를 담은 다큐멘터리가 마을 공동체의 후원에 힘입어 제작되고 개봉까지 했다는 것은, 그것 자체로 기적에 가깝다. 제작진과 성미산 사람들은, 이 다큐를 더 많은 동시대인들이 관람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가지고 있다. 그 바람 속에는, 그들의 삶을 자랑하려는 욕망이 아니라, 나누고 함께 하는 삶이 가능할 수 있음을 확인해주었으면 하는 소박한 확산의 소망이 들어 있을 것이다.
'도깨비' 정인기 씨는, 이 영화의 특별 상영 후 자신이 직접 작사 작곡한 '아름답도다'라는, 멜로디는 간결하지만 아주 인상적인 노래를 불렀다. 그의 이웃이자 성미산 마을 사람들에게 보내는 헌사다. 그 노랫말처럼, 당신은 이 다큐멘터리에서 진짜 아름다운 사람들의 얼굴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이 작품은, 그런 아름다움을 목격할 희소한 기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