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무비스토커> 프롤로그

영화 이야기 2013. 4. 16. 16:15 Posted by cinemAgora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한 젊은 커플이 나누는 대화를 우연히 엿듣게 됐다.


“야, 영화 쩐다!”

“그렇지? 개쩐다.”


물론 ‘재미있다’는 말을 요즘 젊은이들의 속어로 쓴 말이긴 해도 나는 왠지 씁쓸했다. 아, 영화 한 편을 이토록 짧고도 간단한 감상으로 일축해 버릴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한국의 연간 극장 관객수가 1억 명을 돌파해 시나브로 2억 명을 향해 줄달음치고 있다. 그런데 영화에 대한 우리들의 대화도 그만큼 풍성해지고 있는가를 자문한다면, 나는 쉽게 “그렇다”고 말할 수 없다. 영화가 시간 때우기 용 오락이었던 게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영화를 통해 사색과 성찰을 도모하는 관객들이 꽤 적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내 기억엔 1990년대가 그런 관객들이 가장 많았던 때였던 것 같다.


반면, 지금의 영화 보기는 즉흥적으로 원하는 감정을 구매하는 행위로 변질돼 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러다 보니, 영화 한 편을 놓고 연출자의 의도를 헤아려 보거나 영화가 담고 있는 세계관을 논한다는 게 바보 같은 짓이 돼 버린 것 같다. 한 마디로 영화의 외형은 커졌으되, 담론은 쪼그라들어버린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영화는 점점 더 거대 상품이 되어 가고, 평론가는 점점 더 쇼핑 호스트로 전락하고 있다.


영화와 관련된 책을 낸다는 것은 그런 점에서 호기롭고도 위험한 일이다. 영화가 거의 상영 시간 동안만 보고 마는 인스턴트 식품처럼 대접 받는 시대에, 또 스스로도 그렇게 대접 받으려고 만들어진 영화들이 수 백만을 넘어 천만 이상의 관객을 모으는 시대에, 영화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을 늘어놓는 데 대해 과연 얼마나 많은 독자들이 귀를 기울일 것인가, 하는 회의가 쉽게 가시지 않는다. 영화는 읽는 게 아니라 보는 것, 또는 보고 마는 것이 돼 버린 시대에 말이다.


그럼에도 ‘영화 보기’의 행위를 넘어선 ‘영화 읽기‘라는 인문적 사유의 시도가 무효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영화를 읽어내려는 시도가 희소해진만큼, 아니, 그럴 수 있는 물리적 기회가 줄어들고 있는 만큼, 오히려 그것에 대한 관객들의 갈증도 반대로 커지고 있음을, 강연 자리에서 느끼곤 한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보기로 했다.


이 책은 최근 몇 년 동안 개봉한 영화들에 대한 여러 각도의 해석의 결과물이다. 여기서 해석이라는 표현은 결코 텍스트로서의 영화 그 자체에 대한 해석을 의미한다기보다, 영화가 세상을 반영하는 방식, 또는 세상이 영화에 투영되는 방식에 대한 해석에 가깝다고 말해두는 게 좋겠다. 내가 천착하고 관심을 두는 부분은, 영화가 얼마나 이 세상을 적확하게 통찰하고 있느냐이고, 영화를 해석할 때 내가 채택한 방법론 역시 바로 그런 관점에 기반을 두고 있다.


대개의 영화광들이 흔히들 “영화를 사랑한다”고 두루뭉술하게 말하지만, 직업적으로 영화를 말해온 나로선, 정확하게 말해 좋은 영화를 사랑하고 나쁜 영화를 증오한다. 해서 이 책에서도 내 기준에 좋은 영화는 칭송하고, 나쁜 영화는 비판했다. 영화 그 자체 뿐만 아니라 그 영화를 소비하는 문화적 환경과 세태에 대해서도 논했다. 그리고 칭송이든 비판이든 내가 가진 관점을 최대한 분명히 드러내려고 애썼다. 왜냐면 영화를 논한다는 것에서 객관이나 중립은 있을 수 없으며, 결국 관람자 또는 평자의 세계관이 불가피하게 개입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것을 숨기고 애써 자신의 평가를 객관화하려는 시도는 기만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하여, 경우에 따라선 내가 가진 편견이 강하게 드러나는 글도 있음을 미리 고백한다. 그 편견이 타당하지 않은 것이라면, 전적으로 나의 한계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제목이 암시하듯, 영화에 대한 수줍고 아름다운 사랑 고백이 아니다. 오히려 집요하게 영화의 발자국을 쫓아가 보려는 시도다. 그런 면에서 거리를 두고 삐딱하게 바라보거나 관람자로서의 나를 사랑하기보다 돈을 더 사랑한 영화들에 대한 시기심을 한껏 드러냈다. 이것 역시 어쨌든 내가 영화를 사랑하는 방식이다. 독자들에게도 의미 있게 닿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무비스토커> 온라인 구매처


인터파크 http://book.interpark.com/product/BookDisplay.do?_method=Detail&sc.shopNo=0000400000&sc.dispNo&sc.prdNo=212240554&bsch_sdisbook


예스 24 http://www.yes24.com/24/goods/8763215?scode=032&OzSrank=1


알라딘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8886170


교보문고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ejkGb=KOR&mallGb=KOR&barcode=9788998886172&orderClick=LAG&Kc=

,
BLOG main image
3 M 興 業 (흥 UP)
영화, 음악, 방송 등 대중 문화의 틀로 세상 보기, 무해한 편견과 유익한 욕망의 해방구
by cinemAgora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1187)
찌질스(zzizzls) (3)
영화 이야기 (702)
음악 이야기 (34)
TV 이야기 (29)
별별 이야기 (122)
사람 이야기 (13)
3M 푸로덕숀 (156)
애경's 3M+1W (52)
민섭's 3M+α (27)
늙은소's 다락방 (26)
라디오걸's 통신소 (1)
진영's 연예백과사전 (4)
순탁's 뮤직라이프 (10)
수빈's 감성홀 (8)

달력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NM Media textcube get rss DNS Powered by DNSEver.com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최근에 받은 트랙백

3 M 興 業 (흥 UP)

cinemAgora's Blog is powered by Tattertools / Supported by TNM Media
Copyright by cinemAgora [ http://www.ringblog.com ]. All rights reserved.

Tattertools 티엔엠미디어 DesignMyself!
cinemAgora's Blog is powered by Textcube. Designed by Qwer999. Supported by TNM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