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번방의 선물'은 위로였을까?

영화 이야기 2013. 4. 15. 09:04 Posted by cinemAgora

위로에는 세 종류가 있다. 1) 곁에만 조용히 있어 주는 위로, 2) 토닥여주며 슬픔을 잊게 해주는 위로, 3) 슬픔을 극복하고 희망을 재충전할 수 있도록 조언을 해주는 위로. 

이를테면 김광석의 노래를 들으면 위로가 된다. 그의 노래는 위의 세가지 종류의 위로로 치면 2번쯤 될 것 같다. 듣고 있자면 마음이 정화되고, 이게 삶이지, 또 나아가 봐야지 하는 생각까지 드니 3번에도 걸쳐 있는 것 같다. 

나는 영화도 위로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영화는 노래와 달라서, 비극의 한 가운데 관객을 끌어다 놓고 위로 한다. 즉 현실을 연상시키는 가상의 설정 속으로, 상상과 현실의 경계 위에서 창작자가 설계한 절망의 심연으로 관객을 안내한 뒤, 마침내 그 절망에 유무형의 보상을 해주는 방식으로 위로를 건네는 것이다. 중요한 전제는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관객들도 함께 그 절망에 일단 동참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로의 방식은 달라도, 영화가 추구하는 위로의 목적은 노래와 다르지 않다. 어찌됐든 관객이 세 가지 위로의 종류 중 어느 한가지를 얻었다 하더라도, 그 영화는 가치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7번방의 선물>도 분명 누군가에게 "위로"를 준 영화로 기억될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위로의 정체가 과연 무엇일까, 하는 생각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천 300만 명이 봤다고 하니, 그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로부터 어떤 위로를 얻었을까, 하는 질문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오늘 아침 페이스북에서 읽은 정윤철 감독의 글은 그게 우리 사회의 집단 무의식과 연관돼 있을 거라는 가설을 제기했다. 흔쾌히 동의한다. 누군가는 예승이 아빠에게서 바보 노무현을 읽었을 수 있을테고, 또 누군가는 박통과 그의 아버지의 사연을 읽었을 수도 있었을테고, 또 누군가는 문재인의 패배로 가눌 수 없는 슬픔을 이 영화를 핑계 삼아 풀고 나왔을 수도 있겠다. 이런 정치적 알레고리를 빼더라도, 영화의 액면 그대로 애틋한 부성과 딸의 사연만으로도 눈물 훔친 분들이 더 많았으리라. 

그 연장선 위에서 나는 이 영화의 위로가 어느 정도 유효했다 할지라도, 그게 과연 영화가 잘 만들어져서인지, 영화 바깥의 세상이 하도 험악해서인지에 대해 단정지어 말할 수 없다. 즉, 사회가 이 영화의 흥행을 소구했느냐, 이 영화가 천 삼백만 명을 소구했느냐에 대한 질문이다. 정윤철 감독은 전자의 입장인 것 같다. 

어찌됐든, 언제나 영화로부터 너무 많은 것을 원하게 돼 있는 평론가는 이 질문에 답을 내놓아야 하고, 무엇보다 영화의 내적 논리 안에서 그 해답을 탐색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 영화가 만든 비극의 장치들이 위로에 해당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없다. 굳이 언어를 개발해 낸다면,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선사하는 감정은, "위로 받은 듯한 착각" 혹은 "눈물을 흘린 주체로서의 자기 만족"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지하철 바닥에 엎드려 손을 벌리고 있는 이에게 백원짜리 동전을 던져주고는 "아, 나는 오늘 참 착한 일을 했구나" 하고 자족하듯 말이다. 

이것이 위로일까? 과연 이 영화를 본 1천 300만 명은 힐링을 얻었을까? 그것조차 위로라고 한다면, 정윤철 감독의 말대로 "우리 사회의 집단적 상처가 정말 깊은 것"이고, 나는 그 상처가 <7번방의 선물>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위로의 개념을 재정의하게 되는, 이 아이러니한 현상을 슬퍼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끝내, 이 영화의 흥행에 딴죽을 걸고 또 걸고 했던 것이다.

어쨌든 말하고 싶다. 이것은 타당한 위로가 아니라고. 위로는 절망의 심연 속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지, 스스로가 울고 있음을, 우리에게 감정이 남아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게 아니다. 관객들은 이미 세상 밖에서 하염 없이 울고 있는데 말이다.




정윤철 감독의 페이스북 글을 여기 옮긴다.


대한민국의 집단 무의식을 건드린 <7번방의 선물> 

드디어 보았다. 유치하다고도 과분한 흥행이라고도 하던 이 영화.
하지만, <도가니+ 말아톤+부러진 화살+쇼생크탈출>의 기막힌 
모듬회인 이 영화가 흥행 안 되는 게 되려 이상한 일이리라. 
한국 영화판이 대단한 게 미국의 전문 장르인 법정드라마를 가져다가 신파 + 디즈니 가족 영화로까지 버무려 전주 비빔밥을 만들어버리니...후덜덜하다. 

사실, 한국 현대사에서 억울하게 감옥에 가고 심지어 사형까지 당한 사람들이 어디 한두 명이랴. 이 영화는 '억울한 사법 살인을 당한 아빠의 무죄를 밝히려는 변호사 딸의 노력'이라는 법정 드라마의 틀에 다시 과거에 아빠와 보냈던 딸의 감방 생활 이야기가 액자 구조로 끼어있다. 

"정의란 무엇인가? " 라는 진보적 주제와 "아빠의 사랑과 희생" 이라는 보수적 주제가 긴밀히 엮여있는 것이다. 메인 플롯은 정의를 찾는 이성의 틀을, 서브플롯은 아빠와 딸의 사랑이라는 본능적 장치를 담고 있다. 

이 컨셉은 상당히 신선하다. 신파냐 아니냐를 떠나 한국 영화에서 보기 드문 참신한 스토리 구조이다. 보통은 이렇게 정반대의 것을 함께 섞을 엄두는 감히 못낸다. 안철수가 새누리당으로 갈 정도의 엄청난, 자칫하면 그대로 자멸할 대결심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나름 성공적으로 좌뇌와 우뇌를 동시에 자극한다.
그 결과, 감옥 안의 죄수 동료들이 살인 현장을 재현해가며 법이 못 밝혀낸 진실을 찾아내는 코믹한 장면은 어떤 추리극 못지 않은장르적 쾌감마저 준다.

물론 감옥에 아이를 반입시키고, 교도소에서 하늘을 나는 기구를 만드는 등 말괄량이 삐삐에나 나올, 말이 안되는 장면들도 있지만 일반 관객들은 뭐 영화니까...하며 충분히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 모든 게 어린 딸의 판타지 일수도 있으니까. (개인적으로 기구 장면은 좋았다. 막장 휴먼이지만 뭔가 끝까지 밀고 가는 느낌? )

좌우간 흥행은 될 요소가 분명 있는데, 왜 모두의 입을 쩍 벌어지게 하며, 몇몇 영화관계자들을 절규하게 하며 굳이 천삼백만이나 되었을까? 기막힌 장르의 믹스만으로 이 놀라운 스코어가 설명될 수 있을까? 이런 식으로 만들면 또 성공할 수 있을까? 100억짜리 영화도 아니고 이런 작은 영화가 천만을 넘는 건 뭔가 대한민국의 집단 무의식을 건드린 건데...과연 그게 뭘까? 

아다시피, 이번 대통령 선거의 이슈는 '아빠와 딸' 이었다. 사람들은 독재자라고 불렸던 아빠의 죄를 용서해주고 성장한 딸을 대통령으로 결국 밀어주었다. 뭔가 분명 이 영화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찬성을 한 51프로의 사람들에게도 그리 개운한 일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무능력한 민주당이 싫어서 그 딸을 선택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하물며 반대한 49프로의 사람들은 엄청난 상처를 받았다.

마치 이 영화는 그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에 대한 아름다운 꿈처럼 느껴진 게 아닐까? 지친 한국인들의 깊숙한 무의식에서 아마도 이런 꿈을 꾸고 싶었던 건 아닐까? 현실을 강타했던 '아빠와 딸' 그리고 '용서' 라는 소재로 ? 하지만 이번엔 되도록이면 아름답고 판타지적으로?

<레미제라블>이 어떤 이들에게 '의식적인' 힐링 영화가 되었다면
(그래서 난 별로 가슴 깊이 힐링이 안되었다) <7번방의 선물>은 정말 깊숙한 '무의식'을 힐링해주는 것은 아니었을까. 

우리를 잘 살게 해주기 위해 모든 걸 희생한, 심지어 총맞아 죽기까지 한 과거의 아빠를 다시 호출해 용서하고 그 딸을 껴안게 만드는 것...심지어 이를 결코 인정할 수 없는 사람들까지도 그렇게 꿈꾸게 만드는 면에서, 좋고 나쁨을 떠나 진정한 힐링 영화 아니었을까? 
그래서 천 삼백만이 본 것 아닐지. 

꿈은 반대라고 하는 건 아마도 우리의 무의식이 의식과 반대의 생각을 해서인지도 모른다. 의식이 인정 못할 때 무의식은 반대의 꿈을 꾸게 해 이를 상쇄시키고 자아를 위로하려고 노력하는지도 모른다.
그런 영화가 우연히 만들어졌을 때 예상외의 흥행을 하는 것 같다.

아참, 어떤 이는 교도소 담장에 걸린 노랑풍선을 보며 억울하게 죽은 또 다른 아빠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늘 바보라고 불리웠던. 
역시 천삼백만의 <광해>가 이미 불러냈었던 그 바보를 또 이 영화가 또 꿈꿨다면, 그래서 천삼백만이 위로 받았다면, 우리의 집단적 상처는 정말 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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