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IPTV로 일본 영화 <남극의 쉐프>를 봤어요. 원작이 있는 영화인데, 뭐랄까 일본 영화 특유의 유머가 있는 작품이었어요. 키득 키득 대면서 보다 보니까 뭐랄까 우울한 기분에 힐링이 되는 느낌이더군요.
이야기는 간단해요. 남극 관측대에 조리사로 간 사람이 주인공인데, 8명의 대원들을 위해 매번 정성 어린 식사들을 내놓죠. 남극에 고립되다시피 1년 넘게 생활해야 하는 대원들에게 낙이 어디 있겠어요. 그저 끼니마다 맛난 거 먹는 게 유일한 낙이죠. 그런 이들을 위해 쉐프는 가지고 간 재료들을 이용해 멋진 식사를 만듭니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적지 않아요. 재료 중에 아주 커다란 닭새우를 발견했는데, 일본인들은 새우하면 튀김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쉐프는 닭새우는 회로 먹는 게 좋다는 의견을 내보지만, 모두들 "튀김 튀김"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랍스터보다 더 큰 닭새우를 튀겨 주죠. 그때 식탁 앞에 둘러 앉은 대원들의 벙찐 표정이란! 대장이 한마디 합니다. "회로 먹을 걸 그랬어!"
대장은 라면 중독자입니다. 그래서 밤마다 몰래 주방에 들어가서 라면을 먹죠. 그러다 결국 라면이 다 떨어져 버린 겁니다. 그날부터 대장은 완전히 넋이 나갑니다. 쉐프에게 매달리다시피 호소합니다. "나는 몸이 라면으로 돼 있는 사람이야. 라면이 없으면 못산다구!"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어요. 면은 어찌어찌 만들어도 간수를 만들 재료가 없었으니까요. 그때 한 과학자가 간수의 성분을 분석해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일러 줍니다. 쉐프는 그 방법대로 그럴듯한 라면을 만들어내죠.
모두가 감동적인 표정으로 라면 앞에 앉은 식탁. 두 명의 대원이 흥분해 뛰어 들어오며 소리칩니다. "밖에 오로라가 떳어요, 아주 멋진 오로라가!" 대장은 말합니다. "오로라가 대수냐!" 그리고 라면을 아주 맛있게 먹는 겁니다.
<남극의 쉐프>를 보면서 인간의 가장 소박한 행복이란 "맛있는 걸 나눠 먹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맛있는 걸 나눠 먹는 사람들은 식구가 되죠. 그들은 그렇게 음식을 매개로 서로 사람의 정을 나누면서 고립된 남극의 생활을 견딜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 대선에서 우리가 너무 많은 것을 원했던 건 아닐 겁니다. 우린 그저 맛있는 음식을 서로 나눠 먹는 세상을 꿈꿨을 뿐이지요. 그런 세상에서 사람들은 더 유쾌하게 웃고, 추위를 함께 견디며, 소박한 유희를 공유할 수 있을 거라고 말이죠. 하지만 현실은 내 밥그릇을 지키는 게 우선이라는 사고가 승리했죠. 어쩌면 우리는 쉐프 없이 남극으로 떠난 신세가 됐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쉐프를 만들어내면 되죠, 뭐. 우린 인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