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타' 거장 김기덕의 통찰

영화 이야기 2012. 9. 9. 12:44 Posted by cinemAgora

 

 

많은 여성 관객들이 김기덕의 영화를 “불편하다”고 말한다. 이유를 물으면 대개 “그의 영화 속에서 여성을 너무 거칠게 다루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어느 정도는 그럴 만하다. 그의 초기작 <섬>(2000)에서는 여성의 질 속에 낚시 바늘을 집어 넣는 장면이 나온다. <수취인 불명>(2001)의 주인공(양동근)은 어머니의 가슴을 칼로 도려낸다. <나쁜 남자>(2002)에서는 길거리에서 다짜고짜 납치한 여성을 창녀로 만들고 감시한다. 안그래도 여성들이 살기에 흉흉한 한국사회에서, 영화에서조차 이런 장면들을 목격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김기덕의 영화 세계에서 여성은 구원자의 위치에 놓여 있다고 본다. 폭력적인 세상에 내 던져진 야수 같은 남성들(혹은 폭력이 내재된 인간)은, 여성을 통해 구원을 얻고자 한다. 그러니까 여성은 예수와 같은 존재이다. 겉보기에 짐승만도 못한 남성들에 의해 휘둘리지만, 결국 그들을 구원하는 건 여성이다. 그러나 감독으로서의 김기덕은 폭력을 상징하는 남성들에게 결코 속세의 구원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들은 죽음을 통해 구원에 다다른다.

 

김기덕의 이런 영화 철학은 세계 3대 영화제를 비롯한 서구 영화계에선 찬사를 얻었지만, 불행히도 한국 관객들에게는 철저하게 외면 당했다. 그의 영화 <활>(2005)은 한국에서 1천 명도 안되는 관객을 모았다. 심지어 그는 베를린과 베니스에서 연거푸 감독상을 받은 이듬해 노숙자로 몰려 경찰서 유치장에 갇히기도 했다. 해외에서의 환대와 국내에서의 홀대 사이에서 그가 어떤 절망감을 느꼈을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그래서 “한국에선 절대 내 영화를 개봉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을 정도다. 한국영화계에 대한 그의 응어리는 그가 직접 찍은 자전적 다큐멘터리 <아리랑>(2011)에도 잘 나와 있다.

 

아이러니의 창작자 김기덕의 응어리는 그러나,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보였으나 역시나 개봉하지 못한 <아멘>(2011)이라는 작품을 통해 어느 정도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짐작케 하고 있다. <아멘>이 신으로부터 강간당한 창작자의 고통을 호소하는, 일종의 고해 성사와도 같은 작품이었다면, 이번 작품 <피에타>를 통해 그는 더욱 격정적으로, 혹은 자조적으로 구원을 말하고 있다.

 

그의 작품 답게 이야기는 간단하다. 사채 빚을 떠안은 사람들에게 찾아가 신체를 상해하는 일을 하는, 악마 같은 사나이 ‘강도’(이정진)가 주인공이다. 어느날 그에게 한 중년의 여인(조민수)가 찾아와 엄마를 자처한다. 여인은 30년 전에 강도를 낳고 무서워 도망쳤다고 고백한다. 여인을 거부하던 강도는 점차 여인의 헌신적 모성애에 감화되며 그 안의 인간성을 회복해 간다. 그러나 이 모든 이야기는 복수와 구원을 말하고자 하는 장치일 뿐이다. 복수는 구원과 맞닿아 있다.

 

스포일러가 될까봐 염려돼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게 유감이지만, 영화 <피에타>는 이제껏 김기덕이 말해온 폭력적 세상에 내 던져진 우리들의 가엾은 영혼이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영화적 성찰이자, 극단의 착취와 극단의 가난이 공존하는 자본주의 한국사회의 살풍경을 굽어보는 사회적 통찰의 소산이다.

 

영화 속에서 강도는 자살하러 건물 옥상을 향해 올라가는 한 채무자와 함께 소규모 주물 공장이 밀집한 청계전을 내려다 본다. 채무자는 힘없는 목소리로 말한다. “여기도 언젠가는 저 빌딩숲처럼 되겠지.” 탐욕을 정당화하는 사회 시스템에 의해 밀려나는 사람들, 김기덕의 영화 세계가 천착한 인물들은, 그가 가해자이든 피해자이든 모두 그런 사람들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그의 잔인한 주인공들조차 그의 피학자들만큼이나 일말의 연민의 범주 안에 포섭되는 것이다.

 

김기덕은 이 영화를 통해 그동안의 무수한 좌충우돌을 통해 마침내 어떤 깨달음을 얻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의 깨달음은 <피에타>를 통해 빛을 발한다. 감히 말하건대, 김기덕은 이제 명실상부한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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