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TV에서 나와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는 역술가 박성준 씨는 대기실에서도 바쁘다. 프로그램 작가들이 너도 나도 자신의 사주를 봐달라고 요청하기 때문이다. 부탁은 안했지만, 박성준 씨가 자청해서 내 사주를 봐줬는데, 완전히 믿지는 않았지만, 희한하게도 뭔가 위로가 되기는 했다. 해서 나는 그에게 “역술이란 어쩌면 심리 상담 같은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 역시 동의했다.
역술의 세계는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역술을 믿는다. 이유가 뭘까. 우리의 삶 자체가 부정형의 미스터리이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유한한 삶에 대한 두려움, 실패와 좌절에 대한 공포, 이런 것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초자연적인 힘으로부터 위안을 구하게 만든다.
사실 과학이라는 것이 이런 불안을 완전히 해결해줄 수 없는 것도 한몫을 한다. 도무지 시공간의 무한성에 대해 과학이 어떤 설명을 내놓을 수 있다는 말인가. 미스터리는 여전히 우리의 존재를 둘러싸고 위력을 발휘한다.
심령술과 과학의 대결을 다룬 <레드 라이트>는 과학의 편에서 심령술을 다루고 있다. 그러니까 주체는 과학이고, 심령술이 객체, 혹은 타자다. 심령술이 사기에 불과하다고 믿는 심리학자 마가렛(시고니 위버)와 그의 조수 톰(킬리언 머피)은 심령술이 행해지는 곳에 찾아가 그들이 상황을 조작하는 현장을 적발해 낸다. 이런 행위를 통해서 그들은 심령술이란 게 사람들에 대한 눈속임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하려 애쓴다.
이런 가운데 은퇴했던 스타 심령술사 사이먼 실버(로버트 드니로)가 30년만에 활동을 재개하기로 한다. 톰은 실버에 대해서도 과학적 반증을 시도하자고 말하지만, 마가렛은 이상하게도 그만은 피하려 한다. 톰이 이유를 묻자 마가렛은 사연을 소개한다. 30녀 전 실버는 마가렛의 트라우마를 정확하게 간파했던 것이다. 그 두려움이 마가렛으로 하여금 실버만은 예외로 남겨두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패기 넘치는 과학자 톰은 실버와의 정면 승부를 시도하고, 예상치 못한 거대한 반전을 향해 달려간다.
<레드 라이트>는 심령술과 과학의 대결 구도로 이야기를 몰고 가면서 영화가 과연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를 호기심 가득 바라보게 만든다. 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맥거핀(관객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일종의 핑계)다. 이 영화의 본질은, 미스터리함이 사람들에게 주는 의미를 탐문하는 데 가깝다.
앞서 말한대로, 미스터리로 가득찬 우리의 삶 속에서 사람들은 미스터리를 통해 구원을 얻고자 한다. 심령술도 미스터리의 영역이다. 자연 법칙이 설명하지 못하는, 혹은 자연 법칙이 강요하는 삶으로부터의 탈출, 심령술은 그것을 확인할 수 없되 확신을 종용하는 무엇으로 설명하려 든다. 그리하여 그것은 또 다른 방식의 위안이자 심리 치료인 셈이다. 과학이 어루만지지 못하는 인간의 상처 안으로 미스터리는 슬며시 파고 들어 항우울제를 처방한다.
관에서 시작해 관으로 끝났던 탁월한 스릴러 <베리드>의 스페인 감독 로드리고 코르테스가 연출했다. 로버트 드니로와 시고니 위버의 둔중한 포스만으로도 볼만한 영화. 8월 23일 개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