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화는 여성에게 두 가지 선물을 선사했다. 하나는 정치적 참정권이고, 또 하나는 성 해방이다. 물론 후자에 관해선 아직까지 논란의 여지가 있다. 특히 ‘젠더’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여성의 성은 여전히 착취와 억압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고 주장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자의 2세를 배타적으로 출산해야 하는, 십자군 전쟁기의 정조대로 상징되는 여성의 봉건적 성 역할은 20세기 이후 ‘어느 정도’는 근대적 주체로 올라서게 됐음을 부인할 수 없다.

 

1950년대 미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킨제이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대상 여성의 절반 정도가 혼전 성교를 경험했으며 26%의 유부녀가 혼외 정사 경험이 있었다. 성적 순결과 정숙이 숙녀의 미덕이라고 말했던 보수적 미국 사회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결과였다.

 

콘돔을 비롯한 피임술의 개발은 여성들에게 실질적으로 더 많은 성적 자유를 안겨줬다. 원치 않는 임신의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됐으므로, 이제 그들도 많은 난봉꾼 남성들이 그렇듯, 당당하게 하룻밤 상대를 찾아 나설 수 있게 된 것이다. 얼마전 타계한, 전 코스모폴리탄 폅집장 헬렌 걸리는 1960년대 여성들에게 당당하게 “섹스를 즐겨라“라고 외쳤을 정도다.

 

어쨌든, 여성들이 남성의 씨를 받아 아이를 낳기만 해야 하는 출산 기계가 아니라, 남성과 똑같이 성적 쾌감을 추구하는 인간이라는 점을 새삼스럽게 ‘발견’한 것은, 인간성을 봉건적 미신으로부터 탈출시킨 19세기 과학의 힘이었다.

 

영화 <히스테리아>는 그 발견의 시작을 극화한 작품이다. 이 영화는 여성 자위 기구인 일명 ‘바이브레이터’가 발명된 비하인드 스토리를 다룬다. 여성의 성적 쾌락이 인정되지 않았던 시기, 성적 불만에 기인한 여성들의 극심한 정신적 불안을, 당대 의학은 ‘히스테리아’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 치유법으로 여성들의 음부를 손으로 마사지하는 치료법을 개발하기에 이른다. 어쩌면 히스테리아가 여성의 성적 불만으로부터 기인한 것임을 19세기의 의사들도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주인공이자 패기 넘치는 젊은 의사 그랜빌은 영국 상류층 여성들의 히스테리아를 치료해주기에 바쁘다. 젊고 잘생기다 보니, 병원은 문전성시다. 그러다 보니 손이 온전할 리가 없다. 매일 얼음물에 손을 넣어 식혀야 하는 곤욕의 와중에, 그는 발명가 친구가 만든 깃털 선풍기를 보고 영감을 얻게 된다. 그게 바로, 바이브레이터의 시초였다.

 

 

 

영화 <히스테리아>는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바이브레이터의 발명기를 소개하는 데 그치는 영화가 아니다. 영화는 매기 질렌할(제이크 질렌할의 누나다)이 연기한 신여성 샬롯을 통해 당대 사회가 여성의 성적 주체성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지를 일깨운다. 샬롯은 그랜빌에게 말한다. “히스테리아는 질병이 아니에요. 멍청하고 우둔한 남성들이 자기 부인들에게 선사한 병이죠.” 말하자면, 여성들을 가부장제의 감옥 속에 가둬 놓고, 그들의 성적 추구는 나몰라라 했던 남성 중심 사회에 대해 경멸 어린 일성을 내뱉는 셈이다. 샬롯은 또한 여성의 참정권을 웅변하는 운동가이기도 하다. 그녀의 상징성은 여성이 억압받고 집안에 갇혀진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성적으로도 한 인간으로 대우받는 세상을 향해 있는 근대적 투쟁이기도 하다.

 

영화 <히스테리아>는, 음란한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들의 삶에 굉장히 중요한 ‘성의 영역’ 그것도 여성의 성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는 영화다. 여성 자위 기구가 나온다는 이유로 음란 딱지를 받은 이 영화가 공중파 영화 프로그램에서 소개되지 못한다는 사실은, 러브호텔이 차고 넘치는 한국사회의 주류적 성담론 역시, 여전한 봉건적 위선성에 갇혀 있음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8월 23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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