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레소리' 투박한 감동

영화 이야기 2012. 5. 10. 11:21 Posted by cinemAgora

 

 

때로는 투박한 것에서 감동을 얻을 때가 있다. 강바람에 하늘하늘 흔들리며 소담하게 피어 있는 들꽃이 정교하게 다듬어진 도심의 화초보다 더 매력적으로 시선을 잡아끄는 것처럼 말이다. 젊음은 서툴고 거칠어서 찬란하게 아름답다. 특별히 꾸미지 않았음에도 꺄르르 웃는 여고생들의 미소는 그 자체로 눈부시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수천억 대의 제작비가 들어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의 스펙터클한 공습에도 불구하고, 간혹 아주 소박한 이야기들이 관객들의 시선을 가로채 버린다. 2002년에 화제를 불러 모았던 <집으로...>라는 영화도 그랬다. 아마추어 배우도 그냥 아마추어가 아닌 70대 할머니를 과감하게 캐스팅한 이 작품이, 그것도 할머니와 손자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담아낸 이 영화가 300만 명이 넘는 대규모 관객을 동원할 것이라는 건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다.

 

다큐멘터리 <워낭소리>는 또 어떤가. 고작 1억 원의 제작비를 들인 이 영화는 촌부와 죽음을 앞둔 늙은 소의 우정을 카메라에 담아 2009년 초 역시 300만 명 이상의 관객 동원에 성공했다. 사람들은 대체로 규모에 압도당하기도 하지만, 때론 작고 소박한 진심에 열렬하게 반응한다. 두 작품은 그걸 웅변한 셈이다.

 

10일 개봉한 <두레소리>라는 작품도 ‘소박한 진정성’이라는 점에서 앞서 언급한 두 편의 영화와 닮았다. 그런데 이 작품은 극영화의 형식을 띄면서도 살짝 다큐멘터리적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두레소리>는 실화를 바탕으로 그 당사자들의 후배들이 아마추어 배우로 참여해 연기를 펼친 작품이다.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의 국악합창단 ‘두레소리’의 창단 실화를 실제 두레소리 멤버들이 직접 재연한 영화다.

스스로 국악에 관심이 지대한 조정래 감독은, 한국판 <스쿨 오브 락>을 연상시키는 이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그 주역들의 후배들로 하여금 연기하게 함으로써, 또한 창단에 참여한 선생님을 그대로 그 역할로 기용함으로써 형식과 내용의 진정성을 한꺼번에 포획한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오로지 입시에만 골몰해야 하는 처지의 학생들이 수업 일수를 채우려고 급조된 합창단에 참여한다. 이 대목은 일본 영화 <스윙걸즈>를 닮았다. 서양 음악을 전공한 선생님은 서양식 합창을 가르치려 들지만, 국악이 전공인 아이들은 쉽게 따라오지 못한다. 결국 방향을 튼 선생님은 국악 합창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 아이들과의 소통과 교감에 성공한다. 그러나 신종 플루라는 돌발 변수가 생기면서, 이들이 참여하려던 합창 대회는 무산되고, 두레소리도 해체되고 만다. 멤버들은 그동안 두레소리에 쏟아 부었던 열정이 아깝다. 그래서 선생님을 설득해, 몰래 합창 대회에 도전하기로 한다.

 

영화 <두레소리>는 이 과정에서 두 명의 캐릭터를 전면에 배치하고 있는데, 판소리 명가의 손녀딸로 설정된 슬기와, 부모 없이 이모와 살아가는 아름이다. 둘도 없는 단짝이지만, 서로의 처지가 다름에서 오는 미묘한 갈등 끝에 둘의 관계도 파국으로 치닫는다. 여느 청소년들 사이에서 있을 법한 우정의 드라마를 두레소리의 창단 이야기와 엮어내는 조정래 감독은 투박하고 거친 화면 연출 위에 꽤나 흥미로운 극적 긴장감을 얹는 데 성공한다.

 

<두레소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연은 역시나 음악이다. 국악 창법으로 합창이 어떻게 가능하며, 화음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직접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음악 영화로서 <두레소리>가 관객들에게 선사하는 진미이다. 주류 음악에서 살짝 비껴나 있는 국악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무관심한 그 분야에 대해, 영화는 뭔가를 던져준다. 그것이 “아, 좋구나“라는 감탄사라면, <두레소리>는 관객과의 소통에 성공한 셈이다.

 

<두레소리>는 투박한 영화다. 그러나 그 투박함은, 열정을 쏟아내는 영화 속 인물들의 투박함과 닿아 있다. 그래서 제작비 1억 달러 짜리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보는 것 이상의 찬란한 아름다움이 배어 나온다. 그 아름다움은 여운도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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