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세대가 바라본 아버지들의 흑역사


79년생 감독 윤종빈이 결국 일을 냈다.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 얘기다. 시사회 직후의 반응부터 심상치 않더니 결국 300만을 훌쩍 넘어서며 흥행 가도에 안착했다. 이 영화, 물건이다.

사실 윤종빈은 중앙대 연극영화과 졸업 작품으로 만든 <용서받지 못한자>(2005) 때부터 될성부른 나무였다. 1년 과선배인 하정우를 일약 대스타의 출발선에 세운 그 영화는, 군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통해 위계의 폭력이 남성들의 내면을 어떻게 파괴하는지에 대한 세밀한 고찰을 선보였다. 단지 주제 의식만 돋보였다면 윤종빈은 덜 주목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미스터리 틀을 차용한 그의 이야기 꾼으로서의 재주도 남달랐다. 국내 굴지의 배급사가 그를 날름 채가 신작을 맡긴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흔히들 ‘마초성’이라고 일컬어지는 왜곡된 남성성의 근원을 군대에서 찾았던 그는, 여성들을 상대로 접대를 하는 호스트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비스티 보이즈>(2008)에서 비로소 사회로 시선을 돌린다. 이 영화는 서울의 강남이라는, 서슴없이 인간을 상품화하는 가운데 욕망과 저주가 교차하는 시공간에 초라하게 서 있는 패배자들을 바라본다. 여성들을 상대로 “공사”를 하며 먹고 사는 재현(하정우)과 자신의 애인에게 무시 당하는 게 죽기 보다 싫은 승우(윤계상)라는 인물을 통해 윤종빈은, 남녀 위계의 질서를 거역해야 하는 직업적 상황 속에서 혼란에 빠져드는 루저 수컷들의 발악을 목격한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눈 앞의 여성을 착취하고, 린치하는 것일 뿐이다. 어쩌면 <비스티 보이즈>는 <용서받지 못한 자>의 강남 버전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세 번째 작품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 역시 윤종빈의 문제 의식이 깊어지고 확장되는 연장선에 놓여 있다. 윤종빈은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조폭 누아르의 틀을 가진 이 영화를 통해 아버지 세대의 생존 방식을 까발린다. 아버지 세대의 생존 방식이란 뭘까. 한마디로 그것은, 주인공 최익현(최민식)이 상징하는 바, 유착이고 허세이며, 기회주의로 규정된다.

부패한 세관 공무원 출신의 최익현은 세관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하자 마약 밀매에 손을 대기로 결심하고, 부산의 잘 나가는 건달 최형배(하정우)와 손을 잡는다. 그는 종친이라면 사돈의 팔촌이 아니라 100촌까지도 파악해 연줄을 만들어 놓고야 마는 인물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고관 대작들과의 커넥션을 무기로, 또 한편으로는 형배가 이끄는 조직폭력배의 물리력을 무기로, 그는 차근차근 자신의 잇속을 챙기며 영역을 넓혀 간다. 그 와중에 그는 자신을 견제하는 형배와 그의 졸개들에 맞서 과감하게 경쟁 조직과 밀거래를 일삼는다. 그 때문에 곤욕을 치르긴 하지만, 주먹 하나만을 믿는 형배에 비하면 최익현이라는 인물은 권력과 폭력을 양날의 칼로 휘두를 줄 아는 처세의 달인이다.

이것은 윤종빈이 한국 현대사의 이면, 혹은 한국 기득권 세력의 정체성을 바라보는 시선이기도 하다. 인맥 네트워크를 통한 자신들만의 견고한 카르텔 안에서 이권을 나누고 세력을 확장했던, 폭력마저도 착취하고 활용했던 그 이중성과 치사함.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대부>가 규정한 아메리칸 대부의 속성이 가차 없는 폭력이라면, 윤종빈이 포착한 한국형 대부는, 한마디로 기회주의의 화신인 셈이다.

어쨌든 N세대 감독 윤종빈은 <용서받지 못한자>에서 이 사회의 마초성이 자라나는 토양으로서의 군대를 탐색한 뒤 <비스티 보이즈>에서 그것이 여성들을 대상으로 폭력적으로 파열되는 풍경을 목격하고,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에선 아버지들의 흑역사를 통해 그 뿌리를 캔다.

재능 있는 감독의 시선은, 작품을 거듭할 수록 깊어지기 마련이다. 바로 그런 점에서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는 윤종빈을, 박찬욱과 봉준호 등을 잇는 작가적 상업영화 감독의 반열에 둔탁한 울림과 함께 올려 놓았다.

2012.2. (빅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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