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춤'

영화 이야기 2011. 11. 16. 17:33 Posted by cinemAgora


많은 사람들이 고양이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다. 대개는 쓰레기를 뒤지거나 주택가 한 가운데서 밤에 우는 길고양이들을 보고 생긴 편견들이다. 그들이 지저분하고 사납다고 생각하거나, 심지어 병을 옮기는 원흉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말 그대로 편견일 뿐이다. 굳이 고양이를 직접 길러 보지 않았다 할지라도 고양이의 생태에 대해 조금만 관심을 가진다면, 그들이 얼마나 깨끗하며 온순한 동물인지 확인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필자도 고양이 애호가, 즉 애묘가다. 이 바닥에서 우리 같은 사람을 집사, 또는 고양이의 입장에서 반려인이라고 부른다. 지난해부터 고양이를 직접 기르고 있는데, 나는 오히려 고양이가 나를 기르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고양이의 세계에 흠뻑 빠지고 말았다. 고양이는 개처럼 인간에게 복종하거나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성을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사랑을 베푼 만큼 사랑을 돌려주는 포유류 동물 특유의 따뜻함을 지녔다. 온갖 것에 호기심을 드러내 화분을 망치는 등 간혹 사고를 치기도 하지만 한번 애교가 작렬하면 원망스러운 마음도 봄 눈 녹듯 사라지게 만든다. 이른바 ‘발라당’과 ‘꾹꾹이’는 안 당해본 사람은 모르는 반려인만의 기쁨이자 희열이다.

이렇게 고양이의 열렬한 추종자가 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길고양이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습관이 생겼다. 아마도 대부분의 반려인들이 그럴 것이다. 고양이를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길에서 사는 고양이들에게 측은지심이 생겨나고, 한 두 번은, 혹은 정기적으로 사료를 가져다 주게 된다. 그들이 경계심을 잔뜩 품은 눈초리로 슬슬 피하면 서운한 마음도 들겠지만, 온갖 위험이 도사린 길 위에서 살아가는 고양이들의 처지를 감안하면 그런 행동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고양이 춤>은 바로 그런 길 위의 고양이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다. CF 감독 출신의 윤기형이 연출 겸 내레이터로, 시인이자 여행가인 이용한이 작가 겸 내레이터로 각각 참여했다. 두 남자는 각자의 매체를 통해 길고양이들에게 접근한다. 윤기형은 동영상 카메라로, 이용한은 스틸 카메라로 자신들 주변의 길고양이들을 포착하는데, 그래서 이 다큐는 정지된 스틸 컷과 움직이는 영상이 교차되면서 두 남자의 길고양이 사랑기를 ‘고백’한다.

두 사람의 카메라가 집요하다 싶을 정도로 잡아내는 고양이들의 움직임과 표정에는, 찍는 이들의 애정이 물씬 묻어난다. 그들은 영역 안의 고양이들의 관계도를 추적하고, 그들의 보금자리를 탐문하며, 로드킬로 “무지개 다리를 건너간” 안타까운 죽음들을 애도한다. 특히 비를 흠뻑 맞고 아슬아슬하게 담장을 달려 가스관 사이로 몸을 숨기는 새끼 고양이를 좇는 장면이나, 길고양이들이 새끼를 낳는 장면, 고양이 가족들의 보금 자리를 포착한 장면 등은,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는 길고양이들의 더욱 깊숙한 생태를 확인시켜준다. 우리는 그런 화면들을 통해 그들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 속에서 얼마나 치열하게 삶을 일구고 있는지를 숙연한 마음으로 바라보게 된다.

단순히 “불쌍한 길고양이를 사랑하자”는 편리한 연민적 구호에 그치지 않는다는 게 이 다큐멘터리가 가진, 아주 중요한 미덕이다. 다큐멘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오로지 인간만이 세상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오만에 경종을 울린다. 세상은 인간과 자연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공간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도시가 자신들만의 전유물인양, 거리의 고양이들을 공해 취급한다. 그리고 숱한 로드킬로 그들을 사지에 몰아 넣는다. 어쩌면 길고양이들의 그런 척박한 삶을 강요한 장본인이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길고양이에 대한 관심은 단순한 동물 사랑의 차원을 넘어 공존의 생태 철학을 생활화하는 작은 출발점이기도 하다.

“길에는 사람이 산다. 길에는 고양이도 산다”는 영화의 마지막 대사가 더 없이 큰 울림을 남기는 건 그래서다. 영화의 흥행 수익금 중 10%는 길고양이 후원에 사용된다.

2011. 11. 빅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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