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코미디의 법칙

영화 이야기 2011. 9. 10. 07:58 Posted by cinemAgora

로맨틱 코미디 좋아하시나요? 아마도 연령대에 따라 다른 대답이 나올 것 같습니다. 20대라면 당연히 좋아하는 분들이 많으실테고, 30-40대 이상 되는 분들이라면, “그거야 젊은이들 사랑 놀음 이야기인데, 우리야 졸업했지” 하실 분도 계실 것 같네요.

‘젊은이들 사랑 놀음’ 맞습니다. 한창 사랑에 설레고 짝짓기에 분주할 나이의 젊은이들이 주인공인 경우가 많지요.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요즘은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들도 나이대가 꽤 올라갔어요. 지난해 개봉했던, 메릴 스트립 주연의 <사랑은 너무 복잡해>가 대표적이죠. 이 영화의 주인공은, 장성한 자녀들을 둔 중년의 이혼녀입니다. 얄궂게도, 주인공이 젊은 여자랑 결혼한 전 남편이랑 불륜의 관계를 맺게 된다는 해프닝을 담고 있습니다. 제목 그대로, 사랑은 나이가 적든 많든 참 복잡하고 풀기 힘든 숙제인 게 틀림이 없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주인공의 나이가 어떻든 로맨틱 코미디에는 일종의 법칙이란 게 존재합니다. 누가 만들어 놓은 건 아닙니다. 그냥 그게 빠지면 로맨틱 코미디가 아닌, 이상한 게 돼 버리는 그런 요소들이 있습니다. 뭘까요?

첫째, 여자 주인공이 절세가인이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아시다시피 대부분의 로맨틱 코미디에서 여자 주인공은 조금 푼수기가 있고, 덜렁대는 성격일 때가 많습니다. 외모도 아주 매력적이라기보다 살짝 수더분한 경우가 많죠. 르네 젤웨거 주연의 <브리짓 존스의 일기> 같은 영화를 떠올리시면, 아하, 그렇구나 하실 겁니다.

둘째, 이게 중요합니다. 남자 주인공은 반드시 훈남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하나 같이 매력이 철철 넘치죠. 성격은 좀 까칠해도 괜찮습니다. 뭐, 어느 정도 바람둥이라도 용서됩니다. 그것도 매력 포인트 가운데 하나니까요.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여자 주인공이 심장을 사르르 녹여 버리는 살인 미소와 자상함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상함도 아무 때나 나오면 헤퍼 보여요! 결정적인 순간에 오로지 여자 주인공을 대상으로만 나와야 합니다.

셋째, 이것은 옵션 중의 하나인데요. 여자 주인공에게 대시하는 남자가 기왕이면 다다익선, 하나가 아니라 둘 이상이면 더욱 좋습니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만 해도 휴 그랜트와 콜린 퍼스라는 두 매력남이 한꺼번에 대시합니다. 여자 주인공은 갈등합니다.

로맨틱 코미디는 아니지만 가장 최근 영화 가운데 <트와일라잇> 같은 영화도 그 공식을 그대로 따르는 영화입니다. 뱀파이어 에드워드와 늑대 인간 제이콥이 동시에 인간 소녀 벨라를 사랑합니다. 뱀파이어는 차가운 자상함을, 늑대 인간은 열정적인 리비도를 상징합니다. 상반된 매력의 소유자들이지만, 그래서 더욱 둘 다 버리기 아깝죠. 벨라는 뭇 소녀들의 판타리를 받아 안아 대리 고민에 빠집니다. 어느 녀석을 선택할 것인가! 아, 행복한 고민입니다. 그러니 <꽃보다 남자> 같은 드라마가 히트하지 않으면 이상할 노릇일 겁니다.

이렇게 설명드리니까, 로맨틱 코미디란 게 참 빤하디 빤한 장르구나, 싶으신 분들도 계실 겁니다. 하지만 또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로맨틱 코미디가 제 아무리 얄팍한 신데렐라 스토리를 담고 있다 할지라도, 거기에도 삶에 대한 성찰과 교훈이 숨어 있을 때가 있거든요. 요즘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들도 그런 점에선 조금은 진화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단순한 사랑 놀음에서 벗어나, 인생에서 누구라도 마주칠 수 있는 갈등의 순간들을 배치하고, 주인공들이 그 역경을 어떻게 극복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새길만한 교훈까지 안겨줍니다.


최근작 <러브 앤 프렌즈>도 마찬가집니다. 주인공 레이첼(지니퍼 굿윈)은 둘도 없는 친구 달시(케이트 허드슨)의 결혼을 앞두고, 덜컥 해서는 안될 상황을 저지르고 맙니다. 달시의 약혼남 덱스(콜린 이글스필드)와 술김에 그만 하룻밤을 보내고 만 것입니다.하룻밤의 실수라면 약과일텐데, 문제는 대학 동창 사이인 두 사람이 아주 오랫동안 서로에 대한 사랑을 품고 있었다는 것을 상호 확인하게 되는 것이죠. 운명의 장난이죠. 그것도 아주 짓궂은 장난!

어떻게 되겠습니까? 여주인공의 갈등이 시작됩니다. 친구를 위해 사랑을 포기할 것인가, 사랑을 위해 친구를 저버릴 것인가. 어느 쪽도 쉬운 건 아닙니다. 두 사람은 달시의 눈을 피해 밀회를 즐기고, 점점 더 빠져 나오기 힘든 미궁 속으로 빠집니다. 그 사이 달시와 덱스의 결혼식은 하루하루 다가옵니다. 레이첼의 또 다른 친구인 에단(존 크래신스키)은, 그런 레이첼이 안타깝다 못해 답답해 한마디 합니다. “그 녀석에게 선택을 하라고 해.” 하지만 이것도 정답은 아닙니다. 레이첼은 차마 친구에게 상처를 입힐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덱스도 놓치기 싶지 않습니다. 그녀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로맨틱 코미디로서 <러브 앤 프렌즈>는 역시나 앞서 말씀드린 여러 가지 법칙들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습니다. 여주인공 수더분하고 남자 주인공 훈남입니다. 변주가 있다면 여주인공이 친구와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영화는 꽤 새길만한 성찰을 건져 올립니다.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우리는 결정을 내려야 할 지점을 통과하게 됩니다. 단지 상처를 주지 않겠다고 결정을 미루거나 머뭇거리게 되면, 결국 불행은 자신에게 귀속됩니다.  레이첼의 결정은 바로 스스로 행복해지는 길을 택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행복해지는 길을 택하는 것만이 나와 주변 사람들을 위해 가장 현명한 것이라고, 영화는 레이첼을 통해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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