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이야기 들어 보셨습니까? 고독함을 느껴 보지 않은 사람은 어른이라고 할 수 없다. 대단한 명언는 아니구요. 제가 지어낸 말입니다. 하지만 공감 하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우리가 삶을 살다 보면 절대적인 고독과 마주 칠 때가 있습니다. 죽음보다 아프고 차갑고 깊은 그 고독감 속에서 몇날 며칠을 허우적 거리며 술로 날을 세는 분도 계실 겁니다.
그렇다면 영화속에서 주인공들은 고독이 몸무림 칠 때, 어떠한 자기 만의 방식으로 고독을 이겨 나갈까요?
첫번째 영화는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입니다. <중경삼림>, 이 영화 속 첫번째 에피소드로 등장하는 금성무, 금성무는 영화속에서 주야장창 뜁니다. 경찰이라는 자기 직업에 대한 훈련도 아니고 직장인 마라톤대회 나가기 위한 연습도 아닙니다. 그저 실연의 상처를 달래기 위해 너무나 힘든 그 고독감을 이기기 위해 뜁니다. 그리고 이런 대사를 남깁니다.
“뛰면서 수분을 다 빼낼 수 있다면 눈물을 흘리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나는 뛴다.”
홍콩에는 사우나가 없는 걸까요? 사우나에 주저 앉아도 땀은 빠집니다. 우리의 금성무는 왜 그토록 뛰어야만 했을 까요? 영화속에서 대사처럼 눈물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일까요?
금성무가 영화속에서 뛰는 것은 자기안에 존재 하고 있는 절대 고독감을 보여 주기 위한 심한 몸부림은 아니었을까요?
두번째 영화는 일본영화인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입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이렇게 이야기하시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조제도 나오고 물고기도 나오는데 호랑이는 어디서 나온다냐? 하지만 그런 걸로 제게 시비 걸지 마시고, 영화속에서 하반신 마비로 나오는 젊은 날의 조제양은 자신만의 고독 속에서 살아 갑니다.
그러던 어느날 행운이 찾아 옵니다. 말 잘 듣고 얼굴 잘 생기고 그런 남자가 자기 발로 찾아옵니다. 조제양은 곧 새로운 희망을 품게 되죠. 고독이 지배하던 자신의 삶이 지나가고 뭔가 희망찬 날들이 찾아 올 것이다. 그러나 옛 어른들의 이야기가 틀린 건 없습니다.
조제의 남자친구, 츠마부키 사토시는 인물 값 한다라는 말처럼 조제를 떠나 갑니다. 다시금 혼자 남겨진 조제양. 하지만, 그녀는 예전과 다름없이 생선요리로 맛있는 반찬을 만들고 혼자만의 식탁을 준비합니다. 그런 그녀의 일상적인 모습 속에서도 우리는 어렵지 않게 고독을 발견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요리를 하기 위해 올라간 의자 위에서 바닥으로 털썩이라는 소리를 내며 뛰어내린 조제양. 스크린 위에서는 보여지지 않지만 스피커를 통해서 전달되는 그 조제양의 털썩의 순간, 우리는 조제양이 얼마나 심한 고독감에 빠져 있는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저 살살 내려와도 될, 조심해서 내려와도 될, 그 의자에서 자신의 몸을 함부로 굴리듯 뛰어내리는 조제의 행위는 자신의 고독을 이겨내기 위한 또 다른 몸부림에 다름 아닌 것입니다. 상투적이고 어설픈 백마디의 대화보다 단 한번의 효과음이 그녀의 고독을 잘 설명해 주고 있는 거죠.
마지막으로 소개해 드릴 영화는 제목부터 고독 스러운, <고독이 몸부림 칠 때>입니다. 고독이 몸 부림 칠 때! 예전에 서울의 한 대학 앞에는 ‘몸부림’이라는 나이트 클럽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나이트 클럽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영화죠. 자, 이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제목 그대로 고독합니다. 마치 실버 타운을 연상시키는 시골의 한적한 작은 마을. 이 마을에서 김무생 선생님은 타조 농장에 옆총을 쏘아 댑니다. 주현 선생님은 그런 김무생 선생님과 싸움박질을 일삼으며, 자신의 고독을 잊고자 하죠.
이제는 이 영화 속에서 진정으로 고독한 인물은
“나는요. 남자 입술이 더 좋구요. 남자 젖꼭지가 더 좋아요”
그는 성정체성이 소수자인 게이 였던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 가면서 꽤 여러 번 스스로 안에 갇혀 고독과 싸워야 될 때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은 그 고독감을 이기기 위해 술을 마시고 티비를 보며 책을 읽고 잊어 보려고 발버둥 칩니다. 문득 이 몇 편의 영화를 보면서 이런 걸 깨닫게 됩니다.
인간은 고독했을 때 가장 강해 질 수 있다!!!
명언이냐구요? 그냥....제 생각입니다.
written by jacosmile(김태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