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4일 개봉하는 <써니>의 언론 시사를 보러 가는 길에 두가지 기우가 들었다. 일단 이 영화가 80년대를 시대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과, 여성들을 주연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그건 상업영화로서 모험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이 그렇다. 지금까지 70-80년대를 추억하는 한국영화 치고 된 영화가 거의 없다. 여성들이 떼로 나온 영화도 마찬가지다. 멀리는 <고양이를 부탁해>부터 가까이는 <걸스카우트><여배우들>까지 흥행과는 거리가 멀었다.  누군가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겠지만, <우생순>도 엄태웅이라는 남성 캐릭터와의 대립과 화해 구도가 플롯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사정이 이럴진대, <써니>가 다시금 80년대를 소환한 것도 모자라, 7명의 여학생들이 뭉친 불량 써클 이야기를 한다고 했을 때 고개가 갸웃해지는 건 무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미더운 구석도 없지 않았으니 이 영화의 각본과 연출을 <과속 스캔들>의 강형철 감독이 맡았다는 점이었다. 이미 전작에서 입증한 그의 코미디 감각과, 특히나 음악적 요소들을 잘 배합하는 그의 솜씨를 한번 더 믿어보기로 했다. 

그 믿음은, 결과적으로 옳았다. <써니>는 80년대를 소환하되, 그 시대가 내포하고 있던 키치적 감성과 일상에 흐르는 폭력적 분위기를 코미디라는 틀 안에 솜씨 좋게 불러와 새로운 시대의 영화적 문법으로 주조한다. '써니'라는 써클에 포함된 소녀들은, 폭력의 논리가 지배하던 시대의 그림자이긴 하지만, 그래도 함께 깔깔대며 순진한 기쁨을 공유하는, 딱 여고생의 감수성을 대표한다.

영화는 이들의 좌충우돌 고교생활을 사십대가 된 현재의 상황과 병치시킨다. 벌교에서 서울로 전학온 나미(심은경)를 중심으로 일곱 친구들이 우정을 다지는 상황이, 이제는 여고생의 엄마가 된 나미(유호정)가 시한부를 선고받은 한 친구와의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이제는 뿔뿔이 흩어져 소식조차 가물한 '써니' 멤버들을 다시 찾아나서는 과정과 맞물린다. 강형철 감독은 주인공들의 현재의 삶 속에서 과거로 이동할 때 아주 절묘한 매개 장치를 활용함으로써, 20년이 훨씬 넘는 시간의 벽을 가볍고도 어여쁘게 오간다.
 
꿈많고 호기롭던 여고생 시절의 일상이 폭소 연발이라면, 현재의 삶은 눈물겹다. 이제 그들은, 더 이상 "나"가 아니라, 누군가의 엄마와 아내로서의 위치에 더 익숙하다. 하지만 영화는, 그들 "아줌마"들에게 10대 시절의 치기를 불러내 선사함으로써, 우정 안에서 스스로의 정체성과 삶의 용기를 되찾는 드라마를 완성한다.

어떤 면에서 이 영화는 의도적 "생략"과 개연성 있는 "판타지"라는 영화적 전략을 구사한다. 생략의 대상은 기혼여성의 삶에 반드시 끼어들게 되는 남편(영화 속에서 유호정의 남편은 해외 출장을 나가 '사라진다')과 자녀들이며, 판타지는 이들이 현재의 삶 속에서 변함 없이 나누게 되는 눈부신 우정의 에피소드들이다. 어쩌면 그게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할지라도 주인공들을 누군가의 무엇이 아닌, 그 자신이라는 주체로 세움으로써 영화적 카타르시스를 뽑아내기 위함이라면, 타당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김준석 음악감독이 참여한 음악적 요소들은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연이다. 비록 턱 & 패티의 리메이크곡이라 할지라도 저 유명한 신디 로퍼의 "Time After Time"을 비롯해 시위대와 전경들의 충돌에 뒤엉켜 라이벌 패거리인 '소녀시대'와 패싸움을 벌이는 장면에서 흐르는 조이의 "Touch By Touch", 영화의 주제곡과도 같은 보니엠의 "Sunny" 등이 80년대적 감성과 통하는 채널 역할을 담당한다. 주인공과 이름이 똑같은 나미의 "빙글빙글", 조덕배의 "꿈에" 등 80년대 히트 가요들도 마찬가지다. 

하여, 나는 이 영화가 성공하기를 바란다. 성공한다면, 아마도 한국영화 흥행사에 또 다른 족적이 될 것이다. 올봄 <그대를 사랑합니다>가 이룩한 성취를 이 영화 <써니>가 이어가기를 기대한다. 이제는 여중생, 여고생의 엄마가 돼 있을 80년대 교복 자율화 세대 여성 관객들이 "엄마 때는 저랬어" 하며 자녀를 이끌고 극장문을 두드린다면, '대박 흥행'도 불가능할 것 같지 않다.

덧붙임)  상큼 발랄한 심은경의 연기는 역시나 발군이다. 중요한 건 다른 여배우들의 연기도 그와 자연스럽게 맞물릴 정도로 썩 괜찮다는 것. 영화에서는 거의 보기 힘들었던 유호정 뿐 아니라 90년대 대표 여배우 진희경의 복귀도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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