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자키] 무표정의 미학

영화 이야기 2011. 4. 17. 16:42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여러분들은 하루에 몇 번쯤 표정에 변화를 보이십니까?

이른 아침 일어났을 때 조금은 졸린듯한 짜증나는 표정, 하지만 반가운 누군가를 만났을 때 또 금방 변하게 되는 환한 기쁜 표정,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렸던 복권이 당첨됐을 때 일생에 한번쯤 쥐어볼 듯한 경악에 가까운 환호성, 혹은 가까운 누군가가 자신의 곁을 떠나갈 때 짓는 슬픈 표정.

신이 인간의 얼굴에 다양한 근육을 준 것은 바로 다양한 표정을 지으라는 일종의 암시가 아니었을까요?

하지만 우린 영화 속에서 절대로 표정의 변화가 없이 두시간 가까운 영화를 끌고가는 황당한 주인공, 그리고 배우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름하여 무표정의 본좌들!

무표정한 연기의 최고봉이라고 한다라면 이제는 명장의 반열에까지 올라있는 한편, 전시대 명배우의 호칭을 얻어냈던 바로 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거론할 수 있습니다.

그의 실질적인 첫번째 히트작 <황야의 무법자>(1964)! 영화 속에서 말 그대로 무법 천지의 서부를 헤집고 다니는 건맨으로 등장을 하죠.

영화 속에서 몇 백 발이 넘을지 모르는 총을 쏘아대면서도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절대로 표정에 변화를 보이지 않습니다. 단지 그 유명한 눈 찌푸림, 그리고 입에 언제 폈는지도 모를 시가 하나만을 문 채 시종일관 자신의 대사를 읊어댑니다.

이후에 제작된 <석양의 무법자>(1966) 또는 <더티 해리>(1971) 시리즈를 통해서도, 또는 최근작 <밀리언 달러 베이비>(2004)나 <그랜토리노>(2008) 속에서도 우리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절대로 웃는 표정이나 우는 표정을 보여 준 적이 없습니다.

일찍이 스타니슬랍스키는 영화 속 배역에 자신을 몰입시킴으로써 다양한 감정들을 표출해 낼수있다는 이야기를 했었습니다만 우리의 클린트 이스트우드 아저씨는 그런데 전혀 관심이 없으시죠.

무표정 하나로 평생의 영화인생을 이끌고 온 외주인공 클린트 이스트우드! 이쯤 되면 저 정도 연기는 나도 할 수 있다! 라고 외치는 영화배우 지망생들이 나오지 않을까, 심히 걱정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다음 영화는 일본의 천재감독이라 불리우는 기타노 다케시의 <하나비>(1997)입니다.

이 영화를 보신 분들은 눈치 채셨겠지만, 극도로 절제된 대사, 롱테이크를 사용한 화면들, 또는 황당한 점프컷을 통해 기존과는 다른 영화문법을 실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일 먼저 이 영화 속에서 눈에 띄는 것은 주인공 기타노 타케시의 표정이라고 할 수 있겠죠.


자신의 아내와 이야기를 나눌 때, 동료와 이야기를 나눌 때, 은행을 털 때도 동네 아이들을 때려줄 때도, 갱들에게 총질을 할 때도, 표정 하나 변화가 없는 기타노 타케시의 연기를 보면서 “일종의 카리스마를 느꼈다” 하시는 분들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오히려 그 무표정이 “고독한 남자의 이면에 감춰진 수많은 슬픔들을 깨닫게 해주었다” 라는 멋진 평을 해준 관객들도 있었죠

하지만 <하나비>에서 보여준 기타노 다케시의 무표정한 연기는, 숨겨진 웃지 못할 상황 하나가 있었습니다.

오토바이 사고로 인한 후유증 때문에 안면마비증상이 바로 <하나비>를 찍을 당시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배우에게 치명적이라 할 수 있는 이 위험한 요소를 기타노 다케시는 무표정한 캐릭터를 창조함으로써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로 만들어내기도 한 것이죠.

한가지 더 웃기는 것, 기타노 다케시가 한국에 왔을 때 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입니다.

도대체 어디로 그렇게 오토바이를 몰고 가셨나요?

라는 질문에 “아내 몰래 바람피러 가기위해서” 라는 대답을 해주었다,라고 합니다.

또다시 이어지는 질문.

그러면 앞으론 바람을 안피시겠네요? 이어지는 대답, “그건 전혀 별개의 문제다.”

기타노 다케시의 그 유머러스한 실생활과 영화 속에서의 무표정한 이미지가 절묘한 대비를 이루면서 우리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그런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음 영화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터미네이터>(1984)입니다.

영화 속에 등장했던 어떤 주인공들보다 그 강한 존재감을 과시했던 기계인간 터미네이터!

그 역할을 맡았던 배우는 미국 LA에 시장에까지 오른 바로 배우 아놀드 슈왈츠제네거였습니다.

그의 출신이 오스트리아였기 때문에 미국식 억양의 구사가 힘들었고 결국 투박한 오스트리아식 억양 때문에 수많은 캐스팅을 놓쳐버린 일화는 이미 우리에게 알려진 이야기들입니다.

하지만 터미네이터를 구상하고 있던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어색한 아놀드 슈왈처제네거의 표정이 무표정한 기계인간을 표현하는데 좀 더 효과적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또한 미국식 억양이 아닌, 조금은 촌스럽고 사투리가 섞여있는 그의 오스트리아 억양이 오히려 미래에서 온 싸이보그의 이미지를 표현하는데 좀 더 효율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죠.


어쩌면 할리우드에 정착하지 못했을 오스트리아 출신의 아놀드 슈왈츠제네거는 기계인간의 캐릭터를 맡음으로써 무표정을 선보였고 결국 그것을 발판삼아 오늘날 미국 LA 시장의 자리에까지 올라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보너스로 선사해 드리는 영화는 팝아티스트 톰 웨이츠와 이기 팝이 주연을 맡았던 짐 자무시의 영화<커피와 담배>(2003)의 한 애피소드입니다.

멀리서 찾아온 친구 이기 팝을 맞는 톰 웨이츠, 두 사람은 금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죠.

그리고 그 유명하면서도 황당한 대사 “우리는 담배를 끊었기 때문에 한대정도는 펴도 돼” 라는 이야기를 나눈 채 맛있게 담배 한 대를 펴봅니다.

곧이어 두 사람이 아티스트라는 것을 마치 관객들에게 보이기라도 하듯 묘한 경쟁의식을 드러내게 되죠.

이기 팝의 한마디 “이 가게에 설치된 주크박스에 너의 노래는 없었다.”

자존심 상해하는 톰 웨이츠, 친구인 이기 팝이 떠난 뒤 그 주크박스를 확인한 채 이런 대사를 남기게 됩니다.

“짜식! 지 음악도 없구만”

한편으론 코믹하고 또 한편으론 어이없을 정도로 냉소적인 이 영화의 단편을 소화하면서 톰 웨이츠와 이기 팝은 거의 변화 없는 표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배우로서의 경력이 일천한 팝 아티스트였기 때문에 짐 자무시는 그들에게 별다른 표정을 제시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음악계에서 반항적이고 퇴폐적인 이미지를 가진 두 명의 아티스트들은 무표정을 통해 다양한 표정을 보여주는 묘한 역설을 영화 속에서 만들어 내기도 하죠.

웃으면 복이 온다는 이야기, 그리고 슬플 땐 차라리 울어버리는 게 낫다는 이야기, 사람들은 수많은 표정을 통해 자신들의 감정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때론 영화 속에서 표정없는 무표정으로 수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배우들이 있다는 것, 흥미롭지 않으십니까?

Written by Jacosmile(김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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