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자키] 록 vs. 클래식

영화 이야기 2011. 4. 5. 17:42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며칠 전 클래식 음악 애호가라는 분과 술을 몇 잔 기울인 적이 있습니다. 술이 약하셨던 그 클래식 애호가 분은 술의 힘을 빌어 몇 가지 이야기를 하더군요. "당신이 추구하고 있는 음악세계, 그 음악의 근간인 락앤롤이란 무뇌아들의 반항 심리를 드러내는 말초적인 음악이 아니겠는가?"

1950년대 엘비스 프레슬리의 등장 당시 평론가들이 했다는 유명한 이야기, "락앤롤이란 목이 졸린 상태의 젊은이들이 기성세대에 무작위적인 반항을 드러내기 위한 일종의 신음소리에 불과하다"란 이야기를 50여 년이 지난 뒤 서울의 술집에서 듣게 됐을 때의 그 황당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저는 직업에 대한 일종의 프라이드를 확인하기 위해 락음악과 클래식이 나오는 몇 편의 영화들을 살펴 보게 되죠. 자, 일단 그 클래식 애호가가 주장했던, 즉 '락음악이란 과연 무뇌아들의 음악인가'라는 것에 대한 반증으로써 몇 편의 영화를 살펴 보겠습니다.

첫 번째 영화는 너무나 유명한 영화 <이지 라이더>(1969). "Born To Be Wild"라는 Steppenwolf의 유명한 락앤롤 음악이 들리며 처음부터 오토바이의 굉음소리를 듣게 되는 이 영화. 당시의 기성세대들은 <이지라이더>에 대해서 수많은 비판을 가합니다. "이것이 영화냐? 이것이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는 영화냐? 이 영화 속에서 사용되고 있는 음악은 일종의 오토바이 굉음과 같은 소음에 불과 하지 않는가?"
 



몇몇 평론가들의 혹평에도 <이지라이더>는 이미 40여 년이란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걸작의 반열에 올라 그 당시의 젊음을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역사 속에서 락앤롤이란 긴 생명력을 유지하며, 끊임없이 새롭게 재해석이 되고 있는 거죠.

하지만, 역설적으로 과연 영화 속에서 클래식 음악은 그토록 고결하고 아름답게만 사용이 됐는가? 거기에 대한 반증의 영화를 몇 편 준비해 봤습니다,

바로 <레옹>(1994)입니다. 주인공인 레옹은 고요한 적막 속에서, 오직 우유를 마시는 마치 아프리카의 마사이 같은 신성함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상대역으로 등장하는 게리 올드만, 실 생활속에서도 알콜 중독이었고, 당대의 모델이자 영화배우인 이사벨라 로셀리니를 입에 담을 수도 없는 폭언과 폭력으로 괴롭혔던 이 말썽 많은 캐릭터는 영화 속에서 현실의 자신의 이미지를 투영한 듯한 형사반장의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리고 그 배경엔 베토벤의 음악이 흐르죠. 인류의 위대한 걸작인 베토벤의 음악이 사이코패스 킬러의 정신세계를 나타내는 장치로 사용이 되고 있는 거죠. 누가 클래식을 귀족적인 고급음악이라고 이야기 했습니까?

 


스탠리 큐브릭의 <시계태엽 오렌지>(1971)에서 베토벤의 음악은 동일한 장치로 사용이 됩니다. 하루 동안의 악행을 마무리하고 주인공 말콤 맥도웰이 집에 돌아와 침대 위에 주저 앉았을 때, 나오던 음악, 그 곡 역시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이었기 때문입니다. "짠짠짠짠 짜라잔짠"이라는 교향곡 9번이 나오는 순간 그 클래식음악이 고급과 귀족을 대표하는 음악인지 의문을 제기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토록 사이코 킬러들과 악당들이 자신들의 배경음악으로 사용했던 클래식!

그 전통을 가장 현대적으로 가져온 인물이 있다면 이름을 입에 올리기조차 소름 끼치는 <양들의 침묵>(1991)의 ‘한니발 렉터’를 들 수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 그는 언제나 순결한 하얀색 죄수복을 입고 나옵니다.

잘 빗어넘긴 '올백'의 머리, 그리고 하얀색 옷으로 자신을 치장하고 있더라도 그가 사이코임을 의심하는 관객은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순간 순간 내뱉는 천재적인 대화들과 클라리스와의 정신적인 교감을 통해서 관객은 스톡홀름 신드롬에 빠진 듯한 애정을 가지고 한니발 렉터를 쳐다 봤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철창에서 탈출을 감행하며 경관들을 살해 한 뒤, 자신이 살해한 경관들을 배경으로 유유자적 여유를 즐기던 한니발 렉터의 배경에 흐르던 음악! 그것은 바로 요한 세바스찬 바하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글렌 굴드의 피아노 연주곡 되겠습니다.





바로 그 클래식 애호가가 바로 제 앞에서 침 튀겨 가면 칭찬해 마지 않았던 바로 그 곡, "땅따라라 따라라", 바로 그 곡이 한니발 렉터의 주제곡으로써 살육이 끝난 순간에 마치 카니발에서 들려지는 음악처럼 섬뜩한 또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이죠.

우리가 일상 속에서 선입견으로 가지게 되는 이미지, 대중음악, 그 중에서도 락앤롤은 싸구려다, 그리고 중세 유럽의 전통으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클래식 음악은 귀족적이고 고급스러운 음악이다, 라는 편견은 영화 속에서 자연스레 깨지게 됩니다.

언제가 여러분들에게 들려드렸던 이야기, "세상에는 오직 두 종류의 음악만이 있다. 좋은 음악과 나쁜 음악" 재즈계의 거장 듀크 엘링턴이 했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바로 이런 기준 조차도 낡아 버린 것이 아닌가, 한번쯤 점검해 봐야 되지 않을까요? 스키드로우의 유명한 보컬리스트 세바스찬 바하는 이런 이야기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세상에는 오직 좋은 음악만이 존재한다. 단 나쁜 아티스트와 좋은 아티스트가 있을 뿐이다."

유습지도 않은 술자리에서 조금은 유식한 팝 칼럼니스트와 조금은 무식한 클래식 애호가 사이의 대화는 음악에 대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어 줬습니다. 지금까지 시네마자키의 똑똑한 김태훈이었습니다.

Written by Jacosmile(김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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