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운동권에는 '정리'라는 용어가 있었다. 만약, '짭새'에게 붙잡혀 누군가의 이름을 불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이미 거창한(?) 이유로 수배된 인물에게 '몰아주기'를 감행하라는 것. 어차피 감옥행이 확정된 사람에게 자잘한 죄목 몇 개쯤 덧붙여도 형량에는 별 차이가 없으니, 노출되지 않은 조직원(?)을 보호하기 위해 노출된 꼬리는 과감하게 '정리'하는 그 시대의 불문률이었다.
그해 5월에 '정리'하기로 예정된 인물은 '광주학살 원흉, 전두환 노태우 처단을 위한 특별위원회 위원장' 박아무개 선배였고, 지침에 따라 나 역시, 조사담당 형사에게 '정리'를 시작했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호구조사를 거쳐, 집회 참여과정을 시간대 별로 타이핑 하던 형사가 드디어 내 이름표가 달린 철근을 손에 들었다.
형사 : 너, 이거 어디서 났어? 누가 준거야? 박아무개야?
나 : 네? (최대한 어리둥절하게...) 그거...제꺼 아닌데요?
형사 : 죽을래? 이름표 안보여? 똑바로 말 안해?
나 : (잠시 어벙벙한 표정으로 뜸들이기...타이밍이 중요해, 타이밍.) 아~ 그거요?
그게 제께 아니구요. 경찰들이 저를 잡으니까, 다른 학생들이 경찰한테 던진 거에요.
근데, 잘못 던지는 바람에, 제가 맞아가지고...
(뒷머리를 보여주며) 여기 보세요. 머리가 깨졌잖아요. 제가 제 머리를 때리겠어요?
(신경질 난 것 처럼) 아이~ 씨, 땜통 생기겠네.
형사 : 니가 갖고 있던 게 아니라고? 조사해 보까?
나 : (제발...조사하지마, 조사하지마...) 저 잡은 경찰한테 한 번 물어보세요.
그게 끝이었다. 콩닥거리는 심장소리를 애써 감추며 거짓말을 토해냈건만, 생각보다 너무 쉽게 끝나버렸다. 뭐야, 이거. 뭐가 이렇게 쉽지? 내가 '내츄럴 본 라이어'야? 아니면, 조사담당이 초보형사야? 의문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유치장에 돌아오니, 낯익은 얼굴이 눈에 띄었다. 친구였다. 시위대열 맨 앞에 있었던 녀석은 최루탄을 뒤집어 쓰는 바람에 ,얼굴이며 목은 물론, 팔까지 몽땅 수포로 뒤덮여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독성을 자랑하는 한국산 최루탄의 위력을 다시 한 번 실감하는 순간. 고통으로 신음하는 친구 옆에 앉아 몇 마디 위로의 말을 건낸 나는, 조사실 상황을 복기하기 시작했다. 도무지 풀리지 않는 의문. 담당 형사는 왜 그렇게 간단하게 조사를 끝냈을까? 철근소지면 무조건 구속사유인데, 딱 한 번 묻고 끝나다니. 설마, 이미 구속이 확정된건가?
잠시 후, 끙끙거리던 친구가 불려 나갔다. 조사실로 가는 군. 어라? 조사실로 향했던 친구는 채 2분도 지나지 않아 다시 돌아왔다.
나 : 왜 이렇게 빨리 오냐?
친구 : 최루탄 냄새 난다고, 저녁 근무자한테 조사 받으래.
나 : 뭐? 저녁 근무자?
순간, 번쩍~ 하며 떠오른 단어가 있었다. 'Good cop, Bad cop'. 르와르 영화 속에서 숱하게 봐왔던 취조실 장면과 함께 떠오른 그 단어가 모든 의문을 푸는 열쇠였다.
to be continued...
그해 5월에 '정리'하기로 예정된 인물은 '광주학살 원흉, 전두환 노태우 처단을 위한 특별위원회 위원장' 박아무개 선배였고, 지침에 따라 나 역시, 조사담당 형사에게 '정리'를 시작했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호구조사를 거쳐, 집회 참여과정을 시간대 별로 타이핑 하던 형사가 드디어 내 이름표가 달린 철근을 손에 들었다.
형사 : 너, 이거 어디서 났어? 누가 준거야? 박아무개야?
나 : 네? (최대한 어리둥절하게...) 그거...제꺼 아닌데요?
형사 : 죽을래? 이름표 안보여? 똑바로 말 안해?
나 : (잠시 어벙벙한 표정으로 뜸들이기...타이밍이 중요해, 타이밍.) 아~ 그거요?
그게 제께 아니구요. 경찰들이 저를 잡으니까, 다른 학생들이 경찰한테 던진 거에요.
근데, 잘못 던지는 바람에, 제가 맞아가지고...
(뒷머리를 보여주며) 여기 보세요. 머리가 깨졌잖아요. 제가 제 머리를 때리겠어요?
(신경질 난 것 처럼) 아이~ 씨, 땜통 생기겠네.
형사 : 니가 갖고 있던 게 아니라고? 조사해 보까?
나 : (제발...조사하지마, 조사하지마...) 저 잡은 경찰한테 한 번 물어보세요.
그게 끝이었다. 콩닥거리는 심장소리를 애써 감추며 거짓말을 토해냈건만, 생각보다 너무 쉽게 끝나버렸다. 뭐야, 이거. 뭐가 이렇게 쉽지? 내가 '내츄럴 본 라이어'야? 아니면, 조사담당이 초보형사야? 의문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유치장에 돌아오니, 낯익은 얼굴이 눈에 띄었다. 친구였다. 시위대열 맨 앞에 있었던 녀석은 최루탄을 뒤집어 쓰는 바람에 ,얼굴이며 목은 물론, 팔까지 몽땅 수포로 뒤덮여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독성을 자랑하는 한국산 최루탄의 위력을 다시 한 번 실감하는 순간. 고통으로 신음하는 친구 옆에 앉아 몇 마디 위로의 말을 건낸 나는, 조사실 상황을 복기하기 시작했다. 도무지 풀리지 않는 의문. 담당 형사는 왜 그렇게 간단하게 조사를 끝냈을까? 철근소지면 무조건 구속사유인데, 딱 한 번 묻고 끝나다니. 설마, 이미 구속이 확정된건가?
잠시 후, 끙끙거리던 친구가 불려 나갔다. 조사실로 가는 군. 어라? 조사실로 향했던 친구는 채 2분도 지나지 않아 다시 돌아왔다.
나 : 왜 이렇게 빨리 오냐?
친구 : 최루탄 냄새 난다고, 저녁 근무자한테 조사 받으래.
나 : 뭐? 저녁 근무자?
순간, 번쩍~ 하며 떠오른 단어가 있었다. 'Good cop, Bad cop'. 르와르 영화 속에서 숱하게 봐왔던 취조실 장면과 함께 떠오른 그 단어가 모든 의문을 푸는 열쇠였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