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해운대' 불법동영상, 돈이 아닌 문화의 문제

cinemAgora 2009. 9. 4. 10:58
가난한 동네에는 좀도둑이 설치기 마련이다. 먹고 살기 빠듯하니 집 보안도 허술하고, 그러니 집을 비운 사이 털리는 일이 부지기수다. 신고해봤자 도둑 잡기도 어렵고, 아무리 도둑이 설친들 뉴스에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고관대작의 집에 도둑이 들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건 빅 뉴스 거리다. 똑같은 절도 사건도 그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관심도가 달라지는 것이다.

영화 <해운대>의 불법 동영상 유출을 둘러싼 파문이 딱 그렇게 보인다. 역대 한국영화 다섯 번째로 천 만 관객을 돌파했다. 엄청난 흥행을 기록한 부자 영화가 됐다. 이 자랑스러운 영화가 해외에서 한국영화의 우수성을 만방에 떨치려는 찰나, 찬물을 끼얹은 사건이 벌어졌다. 그동안 숱한 영화들의 불법 다운로드 문제에 시큰둥했던 언론이 왠일인지 '발본색원'을 외친다.

'너 잘났다'는 비아냥을 들으며 "불법 다운로드족은 영화의 품질을 논하지 말라"고 외친 바 있는 나로선 이런 계기로나마 주의가 환기되는 것에 대해 반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가워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천 만 명 이상의 관객이 본 영화라야 그 심각성이 논의되는 풍경은 일말의 씁쓸함을 안겨준다.

불법 다운로드의 폐해가 심각한 것은 단순히 돈 번 영화가 돈 더 버는 데 방해가 되는 문제에 그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부자야 망하면 삼년은 버틴다지만, 여유가 없는 이들은 털리고 나면 쫄딱 망하는 이치다. 극장 흥행에서는 부진했지만 그나마 부가 판권 시장을 향해 만회를 노렸던 작고 괜찮은 영화들이 불법 다운로드 한방에 나가 떨어지는 사례가 널렸다.

한국영화에만 국한할 문제도 아니다. 무수히 많은 해외의 걸작영화들이 불법 다운로드로 인해 한국에서 개봉을 회피하거나 수입이 됐어도 개봉을 포기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공짜 좋아하는 사람들 때문에, 아니 그 심리를 이용해 돈을 벌겠다는 P2P 장사치들 때문에 관객들이 정당하게 누려야 할 문화 향유권의 폭이 축소되고 있는 현상이 더 큰 문제인 것이다.

이것은 돈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의 문제다. <해운대> 불법 동영상 유출 파문을 둘러싼 논의도 그렇게 물꼬를 트는 게 지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