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 조종과 상황극의 조합으로 정체성을 다지고 있는 MBC 일요 예능 프로그램 [뜨거운 형제들]은 온라인 게임 대전을 지켜보는 듯한 체험을 제공한다. 두 명의 조종사는 모니터를 지켜보며 자신의 아바타에게 명령을 지시한다. 매 주 새로운 여성이 소개팅에 나오고, 조종사는 아바타를 바꿔가며 새로운 맵에 적응하느라 고군분투한다.

여러모로 이 프로그램은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을 연상하게 한다. 표면적으로 이 게임(뜨거운형제들)은 여성에게 선택받은 사람이 승자가 되는 룰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승리는 다른 곳에 감춰져 있다. [뜨거운 형제들]이란 이름의 이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은, 땅따먹기처럼 누가 더 많은 영토를 확보하느냐와, 보물찾기 퀘스트를 누가 더 많이 달성했는가로 승자를 가른다. 여기서 영토는 방송분량이고, 보물은 빅재미, 빅웃음(거성 박명수 어휘록 참조)이다. 소개팅 상대에게 호감을 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소개팅 여성이 불쾌하게 여길 수도 있는 언행을 명령하는 것은 게임의 또 다른 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는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이기는 것임에도, 숨겨진 룰을 따를 수밖에 없는 것.
이런 이중성이 이 프로그램을 특징짓는다.


[그림 1] 아바타 소개팅의 구조



[뜨거운 형제들]은 기이한 구조를 취하고 있다. 두 명의 조종사는 각자 자신의 아바타를 조종하며 한 명의 여성을 상대해야 한다. 이를 표로 구성하면 그림 1과 같다.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견제’와 ‘조종’, ‘관찰’행위가 동시 발생한다. 각각의 인물을 중심으로 그들이 취해야 할 액션들을 재구성하면 그림 2가 된다.

[그림 2] 조종사와 아바타가 수행해야 할 역할



조종사는 다른 조종사를 견제하는 동시에 자신의 아바타를 조종하면서 소개팅에 나온 여성의 반응을 관찰해야만 한다. 아바타로 나선 연예인 역시 조종사의 명령을 수행하면서 동시에 다른 아바타의 행동을 견제하고, 앞에 앉은 여성을 관찰해 적절한 태도 변화를 보여줘야 하는 복잡한 상황에 놓여 있다. 그리고 이 모든 행동은 웃음을 유발해야하며, 그로인하여 방송분량이 확보되리라는 전략에 부합해야만 하니, 실로 복잡한 게임 아닌가. 전 출연진에게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을 권하는 바다.

그런데 여기에 또 하나의 변수가 존재한다. 소개팅에 나온 여성의 입장인데, 이를 그림 3으로 표현해보자.

[그림 3] 소개팅에 참여한 여성의 입장


소개팅에 나온 여성의 상당수가 연극영화과에 재학 중이거나, 연예인 지망생이다. 그 때문에 이들은 방송국과 시청자를 의식하며 소개팅에 참여한다. 또한 1, 2회가 방영된 이후에는 이것이 아바타소개팅임을 사전에 알게 되었고, 아바타를 조종하는 다른 존재를 끊임없이 의식하게 된다. 그런 이유로 불쾌한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그 상황에 심리적으로 몰입되어 있지 않다보니, 크게 기분나빠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게 되는 것이다.

두 명의 조종사와 두 명의 아바타는 소개팅녀의 이러한 입장을 역이용하는 전략을 채택한다. 또한 다소 불쾌한 언행을 하게 되더라도 이에 대해 특정인이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 좋은 안전막이 된다. 조종사는 자신이 직접 소개팅에 나서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바타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달한다. 소개팅에 나선 남성들은 자신이 불쾌한 말을 내뱉거나 이미지에 손상이 갈 만한 행동을 하더라도, 조종사 탓으로 돌릴 수 있음에 안심하며 명령을 수행한다. 웃음의 상당부분은 이처럼 책임소재가 불분명한 행위에서 발생한다. 명령을 내린 조종사가 웃긴 건 지, 그 명령을 수행한 아바타가 웃긴 건 지 알 수 없는 상황. 아바타의 독자적인 행동이나, 조종사의 지나친 개입으로 아바타가 이를 변형할 수 없을 때 프로그램은 위기를 맞는다. 노유민이 실패한 이유는 아바타를 완벽한 자신의 대체물로 만들고자 했기 때문이다. 아바타가 명령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변형하게끔 자유도를 제공하지 않으면, 모든 결과는 조종사의 책임이 된다. 더불어 ‘아바타 소개팅’이라는 컨셉을 지속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따른다. 매 주 같은 사람이 소개팅에 나온다면, 그 재미가 얼마나 오래 유지될 수 있겠는가.

[뜨거운 형제들]이 언제까지 아바타소개팅을 계속해나갈지 모르겠지만, 이 컨셉을 조금이라도 오래 지속하려면 소개팅에 나오는 여성을 바꾸는 것 만으로는 부족하다. 조종사는 자신에게 내제한 여러 모습 중 특정한 면을 부각시키며 매 주 다른 모습으로 아바타를 조종해야 하며, 아바타로 등장하는 인물 역시 주어진 명령을 해석하고 가공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정체성을 시도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다양한 역할을 설정하고 상황극을 즐기는 박명수의 개그 스타일을 적극적으로 확장해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때로는 안쓰러운 아버지였다가 잘 나가는 CEO로, 호통치는 동네 형에서 실연의 아픔으로 울부짖는 낭만주의자로 변신하였던 것처럼. 조종사와 아바타가 매 주 자신의 성격을 규정한 다음 이것이 충돌하는 과정을 보여준다면 ‘아바타 소개팅’이 조금은 더 긴 수명을 확보하지 않으려나?


posted by 늙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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