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09년 초 김연아 선수가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1위를 한 후 1년이 지난 지금, 그녀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수상하였다. 언론과 국민은 일본 선수인 아사다 마오와 김연아의 대결에 주목했지만, 한국 광고 시장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김연아의 그늘에 가려지게 된 이는 김태희가 아닐까?  

김태희에서 김연아로 모델을 교체한 브랜드가 몇 개나 되는지 따져볼 일은 아니다. 그 보다는, 김태희가 광고 시장에서 활약하며 만들어온 그녀의 브랜드 영역이 김연아 선수의 브랜드 이미지에 종속되어 버렸다고 보는게 타당하다. 예쁜 얼굴과 좋은 성적, 서울대라는 학벌로 구성된 김태희는 그간 자녀 교육에 열성적인 부모들의 지향점에 가까웠다. 그녀의 외적 조건들은 외모와 성적, 학벌을 중시하는 한국사회의 욕망이 하나로 결합된 아이콘이 되기 충분해보였다. 

그러나 김연아에게 집중된 미디어와 광고는, 김태희로는 충분하지 못하였다고 이야기한다. 김태희는 성공을 위해 필요한 조건이라 여겨져 온 '외모', '성적', '학벌'을 갖추고 있음에도 기대만큼의 충분한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다. 자신에게 주어진 행운을 소모하며, 그것과 맞바꾼 광고모델로서의 수익이 그녀가 거둔 성공의 결과다. 외모와 학벌을 팔아 만든 그녀의 브랜드 이미지는 확장을 시도하지 않았고, 광고 모델로서의 김태희는 '외모'와 '학벌'이 큰 노력 없이 편히 살 수 있는 밥그릇으로 인식하게끔 했다. 그런 점에서 김연아의 광고시장 진출은 김태희에게 큰 위협이 된다.  

김연아는 김태희와는 다른 방식의 교육 아이콘이다. 드라마 '공부의 신'에 의하면, 서울대 입학은 1년의 노력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 아닌가. 그러나 김연아의 성취는 보다 길고 고통에 가까운 성실함을 요구하며, 주어진 교육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 또한 입증한다. 내신 관리와 높은 수능 성적으로 명문대에 진학한 다음 대기업에 입사하는 것보다, 자신이 잘 하고 좋아하는 일에서 성공을 거두는 것. 서로 다른 두 가지 선택에서 김태희는 전자의, 김연아는 후자의 대표가 된다. 

삶의 모델에 있어 김태희의 이미지는 김연아에 비해 낡은 전략으로 느껴진다. 더구나 김태희는 그녀의 지극히 개인적인 얼굴을 드러낸 적이 없지 않은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여주지 못한 채 진열장 안에 있던 탓에 유리병 안의 장미처럼 비현실적인 존재로 자신을 한정시켰으니... 자녀 교육의 이상향과 한국 사회의 욕망이, 김태희에서 김연아로 바뀌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교육이 인형을 만드는 게 목적이 아니라면, 웃고 울고 한숨 쉬며 하품하는 김연아가 더 사람으로 느껴지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그간 김태희는 미디어에 자신을 노출하지 않았고, 명품화 전략을 채택함으로써 인간으로서의 김태희를 보여주지 않으려 했다. 진열대 안의, 소유하고 싶은 욕망만 일으킬 뿐 만질 수 없는 존재로 자신을 구축한 건 그녀 자신이었다. 반면 김연아는 상당히 엽기적이기까지 한 표정의 개인 사진이나, 노래방에서 친구와 노는 영상과 같은 지극히 사적인 모습까지 공개하며 대중에게 활기 넘치는 모습으로 접근해왔고, 그런 이미지가 쌓여 광고 가치를 상승시켜왔다.


광고 전략 역시 여기에 맞춰진다. 김태희는 제품이 요구하는 이미지에 '김태희'라는 상표를 결합하여 광고를 제 3의 상품으로 포장하는데 유효했다. 반면 김연아는 그녀의 지극히 사적인 표정 아래 제품의 이미지를 가리는 방식을 채택한다.(매일우유나 현대 자동차 광고가 대표적) 말 그대로 김연아에게 묻어가는 전략인데, 그 때의 김연아는 경기장 위에서 연기를 펼치는 선수가 아니라, 좋은 경기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으로서의 '무대 밖의 김연아'라는 이미지로 편집된다.  

김태희가 구축한 엄친딸의 브랜드 이미지는 또 다른, 예쁘고 학벌 좋은 제 2의 김태희에게 계승되지 못하듯 싶다. 그 자리에는 예쁜 얼굴로 잘 놀기까지 하면서 자신의 분야를 찾아 매진하는 또 다른 김연아가 차지할 듯. 그러나 다른 시각으로 보면, 광고가 지향하는 이미지가 김태희에서 김연아로 넘어갔다는 사실은, 개인에게 요구되는 가치가 증가하였으며 더욱 가혹해졌음을 반증하기도 한다. 김연아처럼 사는 것 보다는 김태희처럼 사는 것이 더 쉽다. 물론 당연한 말이지만, 김태희처럼 사는 것 보다는 공부 좀 덜 하고, 조금 더 노는 것이 편하긴 하다. 애초에 루저가 될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 나라이긴 했지만, 김태희보다는 김연아가 되라고 주문하다니... 기대치가 너무 높은게 아닐까?

2.
어떤 스포츠는 관중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한다. 대표적인 종목이 권투로,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 할지라도 단 한 대도 맞지 않고 승리할 수는 없다. 모든 관중은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를 응원한다. 주먹을 잘 휘두르라고 말 할 수는 있지만 '한 대도 맞지 말라'고 그에게 주문할 수는 없다. 그가 맞아 피흘리고 눈이 부어 앞이 잘 보이지 않게 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그를 응원한다고 참 뻔뻔하게도 말해왔다. 그 때에 이르면 권투는 가학과 피학의 양 주먹을 사용해 관중을 코너로 몰아넣는다. 상대를 때리기 바라는 한편 우리 편이 맞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피겨 스케이팅, 특히 여성 싱글 프로그램 역시 미안함을 유발하게 한다는 점에서 편히 지켜보기 어려운 종목 중 하나다. 얇고 하늘거리는 짧은 원피스와 살색 스타킹은, 저곳이 영하의 빙판 위라는 사실을 잠시 잊게 만든다. 그러나 그녀들이 빙판에서 미끄러지거나 넘어질 때마다 맨 살이 얼음에 부딪히는 고통이 느껴져 마음이 편치 않다. 아무도 넘어지지 않으면 좋으련만, 규칙은 보다 어려운 점프를 구성하라고 서로를 경쟁시킨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양, 차가운 얼음 위에서 얇은 의상을 입고 춤추듯 움직이던 이 소녀들은, 빙판에 넘어지며 자신이 아주 새로운 존재는 아니었음을 부끄럽게 고백한다.  

이건 정말 이상하다. 애초에 날지 못하는 새들을 절벽에 세우고 날아보라며 등을 떠미는 것 같은 그런 미안함. 넘어지는 것이 당연한 빙판 위에 얇은 드레스를 입은 어린 소녀들을 내보낸 후, 절대 넘어지지 말라고 주문하다니. 어쩐지 피겨 스케이팅은 점점 더 미안한 경기가 되고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점 때문에 김연아는 새로운 존재로 인식된다. 절벽 아래 뛰어내렸지만 그녀는 추락하지 않고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 날개를 펼쳐보인다. 애초에 인간이 모두 날개가 있기라도 한 것처럼.

posted by 늙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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