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카페 광고 속 원형감옥

늙은소's 다락방 2009. 1. 16. 10:55 Posted by 늙은소

맥도날드가 ‘맥카페’라는 이름으로 커피브랜드 사업을 본격화하며 매우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고가정책을 펼쳐온 ‘스타벅스’와 ‘커피빈’을 경쟁상대로 정의하고, 좋은 품질의 커피를 보다 저렴하게 제공할 수 있다며 광고를 집행하고 있는 중이다. 특히 TV 광고는 두 가지 형태의 심리실험을 통해 우리의 커피 소비방식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이 광고는 자사의 커피를 가격과 브랜드라는 추상적 이미지를 배제한 채, 선입견 없이 대해줄 것을 설득하기 위해 제작되었다. 광고에서 피실험자들은 자신의 앞에 놓인 커피의 가격에 의존해, 동일한 커피를 마신 뒤 고가의 커피가 더 맛이 좋다고 응답하거나, 다른 사람들이 선택한 것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양상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이 현명한 소비자가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맥카페의 광고 전략은 현명한 소비자가 되어야 한다는 우리의 강박관념을 자극한다. 2천원이면 마실 수 있는 커피를 4천원이나 주고 마셨다며, 우리의 어리석은 소비행태를 꾸짖는 것이다. 광고는 충분히 자극적이어서 강한 인상과 함께 수치심마저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커피와 함께 한 많은 기억을 ‘과소비’이며 ‘어리석은 구매행위’로 몰아붙이는 것은 어쩐지 부당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합리적인 소비를 위해서라면 이런 억울함 쯤은 무시해야 옳은 것일까?

최근 들어 이러한 경향의 광고 마케팅이 부쩍 증가하는 추세다. 회원등급에 따른 할인율과 추가적립금을 비교하며 진행하는 소비. 각종 할인카드와 포인트제도, 쿠폰, 반짝 세일과 같은 정보를 파악하고 있어야 현명한 소비자라는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지금의 자본주의 구조다. 과거, 시장은 제품을 판매하는 데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제품의 장점을 소개하고, 소비자에게 이 제품이 반드시 필요함을 강조하기 위해 광고가 사용되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심화되며, 소비는 제품과 제품이 두르고 있는 이미지를 함께 구매하는 것으로 전환되었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준다’는 카피의 등장은 바로 이러한 이미지 소비의 극단을 보여주었다.

자아 정체성의 결여를 소비의 욕망으로 메우려는 태도가 등장하며 개인의 소외가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한 일단의 사람들은 소비의 욕구를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또 다른 부류는 이와 반대로 욕구 충족을 위해 철저한 자본주의자로 탈바꿈할 것을 선택하였다. 부동산과 주식, 펀드 등 각종 투자정보를 수집하고, 경제흐름을 꿰뚫으려는 노력 속에는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기보다는 스스로 자본주의를 통제하겠다는 야심이 숨어있기도 하다. '똑똑한 소비자'의 이미지가 이 과정에서 부각되었고, 시장은 이러한 흐름을 놓치지 않고 새로운 형태의 소비를 제시하였다. 만 원짜리 물건을 사면 천원이 적립되고 회원가입을 하면 천백 원이 적립되며 3개월 내 총 구매가가 20만 원이 넘으면 추가 적립금이 누적되어 2천 원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새로운 시장의 규칙이다. 돈을 쓰면서도 돈을 벌고 있다는 착각을 심어주는 것. 장바구니 50원을 아꼈다는 사실에 5만원의 충동구매를 잊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 현대의 소비자가 보여주는 모순이다. 그리고 이러한 모순된 소비심리를 활용한 광고가 속속 TV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포인트는 얼마나 써보았느냐’며 롯데카드는 소비자의 영리한 소비를 재촉하였고, ‘똑똑한 김태희의 천재적 카드 생활’은 소비에도 점수를 매길 수 있다고 강변한다. - 내 돈을 내가 쓰는데도 그 소비가 얼마나 똑똑하였는지 평가받아야 하다니! - 이제 소비자는 구매한 제품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그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 어떻게 머리를 썼는가로 자신을 입증하기에 이르렀다. '부자로 예정된 존재'라는 (가히 신앙이라고 부를 법한) 믿음을 얻기 위해, 영악하고 똑똑한 소비자라는 타이틀에 집착하게 된 것이다.



현대 자본주의는 위장된 파놉티콘의 감옥을 설계한다. 제품을 선택할 자유를 제한하던 과거의 시장은 차라리 정직했다. 현대의 감옥은 소비자에게 죄수가 아닌 간수의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그가 시장을 감시, 통제하고 있다는 착각을 심어주는 양상으로 진화해 왔다. 소비자는 자신이 현명한 소비를 하고 있다는 만족감을 얻기 위해 (시장과 제품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비교하느라) 삶의 대부분을 저당 잡혀 버린다. 이 감옥의 외부에는 또 하나의 감옥이 벽을 두르고 있다. 시장을 감시하는 역할에 푹 빠진 소비자를 관찰하는 또 하나의 감옥이.

시장을 감시하는 똑똑한 소비자라는 명예는, 개인을 소비자로밖에 보지 않는 자본주의적 속성을 은폐하는 좋은 수단이다. 보드리야르의 지적은 일견 타당하다. ‘사회 전체가 감옥이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감옥은 저기 저곳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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