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을 둘러싼 두번째 논쟁

영화 이야기 2015. 8. 13. 08:46 Posted by cinemAgora

강한섭의 반론과 최광희의 재반론


이것이 화폐영화다 - 강한섭 (평론가)
최광희의 <암살> 옹호론에 대한 반론


<암살>은 영화가 아니다. 대중영화도 아니다. 제7의 예술로서의 영화가 아니고 ‘관객이 원하는 것을 준다’는 자유주의 문화론이 말하는 대중영화도 아니라면 <암살>은 도대체 무엇인가? <암살>은 화폐영화다. 자본이 주는 억압과 공포를 스스로 자본이 됨으로써 해결하는 영화, 즉 자본을 내면화하여 아예 영화=자본이 된 화폐영화다. 그래서 최동훈은 상념을 상상력으로 표상하는 아티스트가 아니고 장인으로서의 연출가도 아니다. 최동훈은 화폐의 작동원리로 시청각적 기호의 집합을 설계하고 집행하는 대한민국 넘버 원 펀드 매니저다.


그렇다면 <암살>이라는 화폐영화는 어떻게 만들어 지고 작동하는가? 바로 ‘15-1200- 180-1500-66-10000-30’이다. 화폐영화는 숫자로 표시되고 수의 상관관계로 설계된다. 세상을 수라는 양적 기호로 단순하고 명확하게 표시하고 나누고 조종한다. 독자 여러분은 <암살>의 난수표를 해석할 수 있는가? 15는 최동훈 감독이 영화 투자배급사 쇼박스와 두 작품을 연출하는 배타적 전속 계약을 맺으면서 받은 ‘파격적’ 계약금 15억 원이다. 1200은 ‘암살 프로젝트’가 설정한 목표 관객 1200만 명이다. 이 수치는 물론 감독의 전 작품 <도둑들>이 동원한 관객 1298만 명에서 나온 것이다. 180은 영화의 제작비 180억원이다. 왜 180억 원인가? 180억 원을 투자하면 영화의 손익분기점은 600만 명 정도다. 즉 <도둑들>의 흥행 반타작만 해도 손익분기점을 돌파하게 된다. 1500은 연중 최고의 흥행시즌인 여름휴가 시즌 중에서도 정점의 주말에 개봉하여 확보할 스크린 수다. 그리고 66은 대박 1200만 명 흥행에서 쇼박스가 얻는 수익금 66억원이다. 10,000은 <암살>의 개봉 시점에 코스닥 상장주인 쇼박스의 목표 주가다 (참고로 작년 8월 쇼박스의 주가는 3천원 정도였다). 이제 마지막 30은 무엇일까? 답은 글의 끝에 있다. 찾아보시라.


우리는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대중영화를 보며 울고 웃는다. 그러나 <암살>을 대중영화가 아니라 화폐영화로 호명하는 이유는 금융자본주의가 인간의 집합적 무의식의 영역을 들여다보면서 대중의 행동 패턴을 숫자로 정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사는 금융자본주의 세상은 사물의 고유한 개체성을 화폐의 투명한 숫자로 대체하는 시대이며 이러한 정보화의 과정을 통해 수집되는 빅 데이터로 미래의 사건을 기획, 연출하는 시대이다. 그런데 공간을 확장하는 클로즈업과 움직임을 확장하는 슬로모션이 보여주는 것처럼 영화 카메라는 ‘시각적 무의식으로 입장할 수 있는 문을 제공한다’. 이 지점에서 금융자본주의를 구성하는 주요한 산업인 영화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투명한 숫자로 제조되고 작동되는 화폐영화가 등장하는 것이다.


즉 <암살>이 블록버스터 액션 활극의 장르를 가지게 된 것은 최동훈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 15억원-1200만 명의 수량적 상관관계에서 도출된 180억 원이라는 수가 명령한 것이다. 영화 서사의 중심인 암살조의 대장으로 여성이 설정되고 그 역을 최고의 여성 카리스마를 가진 전지현이 연기하는 것도 화폐가 결정한 것이다. 여성 항일 투사의 전형성으로 안옥윤이라는 캐릭터가 창조되고 그 페르소나에 어울리는 배우로 전지현이 캐스팅 된 것이 아니라 가장 많은 관객을 끌어들이는 톱스타 전지현의 이미지에 따라 안옥윤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지현–이정재 투톱라인은 뭔가 약하기 때문에 서사적으로 꼭 필요하지 않은 청부살인업자 하와이 피스톨이 설정되고 그 역을 남성 최고 스타 하정우가 연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2015년 여름 대한민국의 집합적 무의식의 풍경은 ‘암살 = 15+1200+180+1500+66+10000+30’이라는 새로운 공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 즉 투명한 숫자는 동시에 무의식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억압적 숫자인 것이다.


그러나 최광희 평론가는 1949년 반민특위의 친일파 청산 실패를 사적 응징의 판타지로 보여주는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를 최동훈 감독의 ‘열망적 인장’으로 해석한다. 그리고 조건을 달고 있지만 <암살>이 역사와 영화 그리고 ‘관객들의 공유된 기억과 무의식의 열망 사이에 놓인 함수’를 풀이하여 ‘역사 의식의 리얼리티’를 보여 주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나는 김구와 김원봉이 역사의 리얼리티를 재현하기 위해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1200만 명 관객을 동원하는 대박영화의 재료인 순결하고 지고한 이상화된 민족주의의 대표자로 끌려 나왔다고 생각한다. 또한 마지막 시퀀스의 사적 응징도 한국인이 내면에 가지는 역사 의식의 리얼리티를 형상화하기 보다는 ‘독립군은 좋아하지만 독립 투쟁은 하지 않는’ 이기적인 보통 관객들에게 정의의 실현이라는 허위의식을 심어주고 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최 평론가의 희망을 담은 분석과 주장은 <암살>을 긍정한 평론 중 가장 깊이 있고 진솔한 평론이다. 또 무의식은 설정된 목표에 따라 연속적이고 순차적으로 흐르기 보다는 충동적이고 무작위적으로 운동한다. 그래서 나는 그의 희망이 실현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언론은 <암살>의 흥행 기록을 경마 중계처럼 보도하고 있다. ‘하루 백만 명 관람’, ‘개봉 닷새 만에 300만 명 돌파’, ‘한국영화 최단기 600만 명 돌파’ 등등. 그러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민족주의 마케팅과 뒤엉켜 ‘오늘날의 시대 상황에 울분을 느끼는 자, 이 영화를 보라’는 말들이 횡횡하고 있다. <암살>의 1500개 스크린 수, 65% 스크린 독과점을 보도하고 전달하는 비판적 담론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금융자본주의 ‘15-1200-180-1500-66-10000-30’이라는 투명하고 억압적인 숫자를 통해 대중의 집합적 무의식을 공략하고 통제하여 마침내 전염력이 강한 디지털 무의식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15-1200-180-1500-66-10000-30’이라는 숫자는 바로 인간의 개별성을 제거하는 화폐의 서사였던 것이다. 우리는 마침내 숫자에 의해 최적화되고 투명해 졌다. 결국 화폐에 의해 길들여진 것이다. 이것이 화폐영화다. 이것이 우리 시대의 진정한 비극이다.


답) 30은 최동훈 감독이 다음 배타적 전속 계약에서 기대할 수 있는 30억원 계약금이다.



별똥별에 소원을 비는 행위에 물리학은 없다.
강한섭의 반론에 대한 재반론

최광희 (평론가)


전제컨대 강한섭 평론가(이하 강한섭)의 '화폐 영화' 개념은 이 시대의 영화를 더 다층적인 시각으로 읽어내는 데 유의미하며 유효하다. <암살>과 같은 대중 영화의 설정과 스토리, 핵심 쾌감 요소들을 만들어내는 게 영화 작가가 아닌, 화폐의 명령이라고 보는 그의 분석은 일견 옳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같은 ‘화폐 결정론’(편의상 이렇게 부르겠다.)이 영화 자체가 수용자들에게 전달하는 쾌감의 정체를 규명할 수 있는 전가의 보도는 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입장이다. 왜냐면 영화는 늘 시대와의 상관 관계를 가지며, 흥행이라는 것은 창작자의 시대 구속성과 관객의 그것이 광범위한 접점을 만들어내는 결과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분명히 하지만 나는 여기서 경영학적 의미에서의 흥행을 말하는 게 아니다. 하나의 사회심리적 현상, 즉 집단 심리적 현상으로서의 흥행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을 화폐 영화라는 개념은 결코 설명할 수 없다.


강한섭은 이른바 '화폐 영화'가 수(數)의 상관 관계로 형성되고 작동된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수란 영화에 투입된 제작비, 영화가 마케팅적으로 확보하는 스크린수, 또는 감독이 받는 개런티, 영화가 달성 목표로 삼는 수익 등이다. 엄밀히 말해 이것은 이윤 추구의 목적을 내재한, 또한 투기성이 매우 강한 자본주의 영화 상품의 필연적인 유통 원리이지, 인문적 차원에서 바라보는 영화 그 자체의 작동 원리라고 말하기엔 비약적이다. 이윤 추구가 영화의 인문적 기능을 압도하고 있다는 그의 문제 의식은, 타당하지만 영화 <암살>에까지 무차별적으로 대입시키기엔 무리가 있다. 그 설명은 후술하도록 하겠다.


강한섭은 <암살>에 대한 최초의 분석 글에서 관객의 ‘분열된 쾌감’이라는 표현을 썼다. 요컨대 화폐 영화가 돈의 명령에 의해 설계된 영화이므로, 관객의 분열된 쾌감을 만족시키거나 강화시킨다는 요지로, 나는 이해한다. 도대체 분열된 쾌감이란 무엇일까. 아쉽게도 그의 글에서 이것에 대한 정치한 부가 설명은 없는데, 아마도 이 대목에서 ‘분열된 쾌감’의 그 나름의 조작적 정의를 가늠해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김구와 김원봉이 역사의 리얼리티를 재현하기 위해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1200만 명 관객을 동원하는 대박영화의 재료인 순결하고 지고한 이상화된 민족주의의 대표자로 끌려 나왔다고 생각한다. 또한 마지막 시퀀스의 사적 응징도 한국인이 내면에 가지는 역사 의식의 리얼리티를 형상화하기 보다는 ‘독립군은 좋아하지만 독립 투쟁은 하지 않는’ 이기적인 보통 관객들에게 정의의 실현이라는 허위의식을 심어주고 있다고 평가한다.”


반문한다면, 김구와 김원봉이 만약 서세원의 망작 <도마 안중근> 같은 영화에 나왔다고 할지라도 대박영화의 재료로 끌려 나왔다고 할 수 있을까? 김구와 김원봉은 항일 무장 투쟁의 상징화된 역사적 기표다. <암살>이 두 인물을 끌어 들인 것은, 팩션 영화가 리얼리티를 담을 수 있는 전략적 재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른바 ‘담론화’라는 과정, 즉 두 인물에 대한 재조명 열풍을 통해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사람들은 전지현의 긴 허벅지만큼이나, 김구와 김원봉에 대해서도 호기심을 갖는다. 이것이 영화가 시대와, 또는 관객과 맺는 상호 작용의 실체적 단면이다.


그렇다면 ‘분열적 쾌감’이라는 말의 실체는 인용한 대목의 두 번째 문장에서 비교적 명징하게 규정된다. “마지막 시퀀스의 사적 응징도 한국인이 내면에 가지는 역사 의식의 리얼리티를 형상화하기 보다는 ‘독립군은 좋아하지만 독립 투쟁은 하지 않는’ 이기적인 보통 관객들에게 정의의 실현이라는 허위의식을 심어주고 있다”는 대목이다. 내가 보기에 이 대목에서 “보통 관객의 허위 의식”이란, <암살>이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설계된 화폐 영화라는 전제된 규정에 의해 끌려 나온 유추에 불과하다. 조금 거칠게 말해 그런 인식 자체가 ‘화폐 영화’라는 프레임에 모든 것을 꿰어 맞추기 위한 '분열적' 허위 의식일지도 모른다.


강한섭은 ‘화폐 영화=>분열된 쾌감의 야기’라는 등식을 발명해 놓고, 거기에 집착한 나머지 자본학적 수의 논리를 뛰어 넘는 인문적 열망, 사회적 담론의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한다. 말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비유를 한번 해보자. 별똥별이 떨어질 때 사람들은 그 별이 어떤 물리학적 현상에 의해 밤하늘을 가르며 날고 있는지를 따지지 않는다. 그저 소원을 빌 뿐이다. 그리고 정체 모를 카타르시스를 얻는다. 그 염원은 분열적 쾌감일까? 별똥별의 물리학적 원리가 실재하는 것만큼이나 거기에 소원을 비는 사람들의 염원도 '실재'하는 것이다.


<암살>이 돈을 벌든 말든, 최동훈이 얼마의 개런티를 받았든, 관객들은 이 영화를 통해 ‘미완의 과거사 청산’에 대한 집단 심리적 부채감을 해소할 것이다. 영화는 깨달음을 주기도 하지만 위안을 주기도 한다. ‘독립군을 좋아하지만 독립 투쟁은 하지 않는’ 이기적인 보통 관객들에게도 독립군을 좋아하고 친일파를 미워하게 만들 모티브는 필요하다. 그래야 독립 투쟁을 하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닌가. <암살>이라는 영화가 갖는 인문학적 좌표는 거기까지다.


<암살>은 당연하게도 이윤 극대화의 임무를 떠안은 최동훈의 영화이지 김기덕의 영화가 아니다. 하지만 그가 만들어내는 쾌감이 무조건 분열적인 것이라고 몰아세울 수는 없다. 조지 루카스에게 왜 장 뤽 고다르처럼 영화를 만들지 않냐고 따질 일은 아닌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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