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골든슬럼버' 이미지의 벽을 넘는 신뢰의 힘!

cinemAgora 2010. 8. 29. 12:56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피쉬 스토리> 2009


일본의 소설가 이사카 코타로와 영화감독 나카무라 요시히로, 그리고 뮤지션 사이토 카즈요시는 자주 모여 술을 마시고 얘기를 나누는 사이로 알려져 있다. 주워 듣기로, 한 번은 사이토 카즈요시가 이런 치기 어린 발언을 했다고 한다. "온갖 영웅들이 다 지구를 지키는데, 왜 음악은 지구를 못지키는거야?"

귀가 번쩍 뜨인 이사카 코타로는 내친 김에 그로부터 제공받은 영감을 소설로 옮겼다. 그리고 나카무라 요시히로는 그걸 영화로 만들었다. 사이토 카즈요시가 음악을 맡았음은 물론이다. 그 작품이, 어느 무명 펑크록 밴드의 잊혀진 노래 한 곡이 수십 년 뒤 위기에 처한 지구를 구해낸다는 황당무계하지만 훈훈한 스토리를 담은 영화 <피쉬 스토리>다.

그 세 사람이 다시 의기투합한 영화가 <골든 슬럼버>다. 역시 원작은 이사카 코타로가 제공했고, 나카무라 요시히로가 메가폰을 쥐었으면 사이토 카즈요시가 음악 감독으로 합류했다. 그래서인지, <피쉬 스토리>와 <골든 슬럼버> 사이에는 유사점이 많다.

형식적으로는 음악이 극을 진행시키는 중요 모티브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 우선 그렇다. 또 하나, 굳이 표현하자면 '아무것도 아닌 것의 소중함'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피쉬 스토리>에서 작은 우연들이 촘촘히 연결되며 거대한 결과를 탄생시키듯, <골든슬럼버>에서는 '습관과 신뢰'가 그 역할을 담당한다.



홍보 과정에서 <골든 슬럼버>는 스릴러로 포장돼 있지만, 실은 야마다 요지로 대표되는 인정희극(人情喜劇)의 전통이 묻어나는 작품이다. '총리 암살범이라는 누명을 쓴 한 남자의 도주극'을 큰 틀로 삼고 있지만 주인공 아오야기(사카이 마사토)의 과거사와 현재를 오가는 휴먼 스토리에 가깝다. 여기에 제법 황당한 유머를 곁들이며 코미디적인 호흡까지 선보이고 있으니, 무슨 쫓고 쫓기는 대추격전을 기대한 관객이라면, 장르적 위화감을 느낄만도 할 것이다.

아무려나, <골든슬럼버>를 선량한 주인공을 겁박하는 거대한 음모와 그것으로부터 도망쳐야 하는 주인공의 대립 구도로 단순화해 본다면, 영화는 두 대립항을 상징하는 키워드를 각각 '이미지'와 '신뢰'라는 말로 제시하고 있다.

어떤 음모 세력인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어쨌든 '그들'로선 아오야기를 총리 암살범으로 모는 건 매우 간단한 일이다. 시스템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시스템은 이미지다. 한번 누군가를 범인으로 지목해 버리면, 언론은 진위 여부와 상관 없이 그를 거대한 흉악범으로 포장하는 데 익숙하다. 그것은 실체와 상관 없는, 그러니까 실체로부터 분리된 어떤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이윽고 그 이미지가 실체가 된다. 우리에게도 굉장히 낯익은 풍경이다.

영화는 자주, "이미지다"라는 대사를 되풀이하며, 이 세계의 거대한 부조리를 통찰한다. 아무리 추악한 진실이라도 조작된 정보와 이미지에 의해 가려질 수 있다. 거꾸로 아무 죄 없는 한 사람을 생매장시킬 수 있다. 이미지는 그렇게 대중을 쉽게 굴복시킨다.


그렇다면, 아오야기는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 그는 도망치는 수밖에 없다. 시스템으로부터 달아나 숨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다. 어찌보면 아오야기는, 미래에 대한 낙관을 상실한 젊은 세대의 절망을 상징하는 인물인지도 모른다. 세상은 자신과 아무 상관없는 논리에 의해 굴러가고, 그 논리의 바퀴 안에 개입하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하다고 믿는, 그리하여 주체할 수 없는 무기력에 굴복해 인터넷 안에 틀어 박히거나 죽음으로의 탈출을 상상하는 깊은 좌절.

그래서인지 <골든 슬럼버>는, 도망치되 죽지 말라는 메시지를 자주 곁들이며 젊은 세대의 절망에 위로를 보낸다. 처음 그에게 총리 암살범으로 몰릴 것임을 알려준 친구는 말한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 전직 조폭 출신으로 그를 돕는 한 노인도 말한다. "의미 없다. 죽는 건 도망치는 게 아니다."

결정적으로 <골든 슬럼버>는 '좌절'이라는 시한부 진단에 '신뢰'와 '연대'를 처방한다. 그리고 그것이 모든 주류화된 이미지의 굴레에서 비켜나 있는 이들의 신뢰와 연대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아오야기를 결정적으로 돕는 이들은, 이 세계에 아무것도 기여할 수 없을 것 같은 이들(심지어 연쇄살인범까지!)이다. 그들이 아오야기에 보내는 무조건적인 신뢰야말로, 그가 이미지 공세의 막강하고도 드높은 벽을 훌쩍 뛰어넘게 만드는 최강의 자산이 된다.

이런 메시지가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것은, 무엇보다 자기 분야에 대한 천착을 넘어 장르간의 연대를 몸소 보여주고 있는 이사카 코타로와 나카무라 요시히로, 사이토 카즈요시 세 사람 때문이다.

이미지는 파편화된 개인들의 무기력을 파고 들어 기만을 실체화한다. 그러나 서로에 대한, 서로의 선량함에 대한 신뢰는, 우리를 시스템의 폭압으로부터 보호해준다. 그것이야말로 언젠가 우리를 구원해줄 유일한 희망이다.  

트위터: @cinemago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