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움직임의 미학 '스트리트 댄스'와 '엽문 2'
cinemAgora
2010. 6. 18. 11:41
월드컵 축구 중계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 잡는 것은, 비단 승부의 향방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피치 위의 선수들이 뛰고 달리고 몸 싸움을 하고, 슈팅을 날릴 때, 잘 훈련된 그들의 움직임은, 경이로운 아름다움을 뿜어낸다. 그것은 김연아가 빙판 위에서 보여주는 퍼포먼스와는 또 다른 쾌감이며 미학이다.
축구 경기의 룰 뿐 아니라, 상대방을 제압하기 위해 선수들이 암묵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전술은 11명 선수들의 움직임에 일종의 질서를 부여한다. 축구 경기가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뚜렷한 목표와 정연한 질서에 의해 만들어진 움직임이기 때문일 것이다. 확실히 그것은 이 세상의 모든 움직임 가운데, 가장 '인간적'이기에 아름답다.
움직임의 미학이라는 측면에서 또 다른 쾌감을 안겨주는 두 편의 영화가 이번 주말 극장가에 나란히 간판을 내걸었다. 영국산 댄스 영화 <스트리트 댄스>와 견자단 주연의 무술 영화 <엽문 2>다. 월드컵 열기에 묻혀 크게 주목받지 않을 공산이 크지만, 두 영화 모두 월드컵 경기 못지 않게 인간 육체가 만들어내는 역동적 쾌감을 객석에 전달하는 데 크게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스트리트 댄스>는, 3D 영화다. <타이탄>처럼 2D 소스를 뻥튀기한 짝퉁 3D가 아니라 처음부터 3D로 촬영된 진짜 3D다. 3D가 모험 판타지 영화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는 즈음에 이 영화의 출현은 신선하다. 춤 동작의 역동성에 3D적 입체감을 부여하는 데 성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입체적 역동성은 힙합 댄서들의 군무 장면에서 빛을 발한다. 특히 댄서가 팀의 뒤에서 앞으로 튀어 나올 때는 실제 댄스 배틀의 현장에 와 있는 듯한 생생함을 포착해 낸다.
대부분의 춤영화가 그렇듯, <스트리트 댄스>의 줄거리도 매우 간단해서 '성장'과 '로맨스'라는 익숙한 플롯의 완성을 향해 나아간다. 하지만 어쩌면 이 영화에서 이야기는 핑계다. 객석을 들썩이게 만드는 게 더 중요한 목표라고 작심한 듯, 시종일관 춤의 향연을 펼쳐 놓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힙합과 발레의 융화를 통해 색다른 움직임의 시너지를 만들어낸다. 중요한 것은 힙합과 발레가 단순히 결합하는 게 아니라 '융화'된다는 것이다. 상반된 질서의 두 동작이 뒤섞이면서 제 3의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과정이야말로, <스트리트 댄스>가 단순한 3D 영화 이상의 가치를 성취한 지점이다.
<스트리트 댄스>가 협동에 의해 창조된 새로운 동작 미학을 보여준다면, <엽문 2>는 무술영화 답게 몸과 몸의 충돌에서 빚어지는 파열적 쾌감을 안겨준다. 그러니까 <스트리트 댄스>가 융화의 미학이라면, <엽문 2>는 충돌의 미학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서양 복싱의 움직임과 동양 무술, 즉 영춘권의 움직임을 충돌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둘다 어떤 질서에 의한 움직임이라는 점에서 같은 목표 지점을 향해 나아간다.
실제 무술 고수 견자단과 홍금보의 훌륭한 퍼포먼스에 힘입어 <엽문 2>는 그 파열 지점으로부터 둔탁하면서도 정교하기 이를 데 없는 동작의 미를 추출해낸다.
1편과 마찬가지로 <엽문 2>는 보기에 따라선 약간 유치한 수준의 중화 민족주의를 드러내고 있다. 1편에서는 중국을 침략한 일본에 대한 증오가 묻어난다면, 2편에서는 홍콩을 접수한 영국에 대한 애증이 드러난다. 하지만 세밀한 무협 액션의 쾌감은 중화 민족주의에 대한 일말의 불편함을 상쇄시키고도 남는다.
목표와 질서를 부여한 움직임의 아름다움, 축구 뿐 아니라 이 두 영화를 통해서도 확인하기 바란다.
트위터: @cinemagora
축구 경기의 룰 뿐 아니라, 상대방을 제압하기 위해 선수들이 암묵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전술은 11명 선수들의 움직임에 일종의 질서를 부여한다. 축구 경기가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뚜렷한 목표와 정연한 질서에 의해 만들어진 움직임이기 때문일 것이다. 확실히 그것은 이 세상의 모든 움직임 가운데, 가장 '인간적'이기에 아름답다.
움직임의 미학이라는 측면에서 또 다른 쾌감을 안겨주는 두 편의 영화가 이번 주말 극장가에 나란히 간판을 내걸었다. 영국산 댄스 영화 <스트리트 댄스>와 견자단 주연의 무술 영화 <엽문 2>다. 월드컵 열기에 묻혀 크게 주목받지 않을 공산이 크지만, 두 영화 모두 월드컵 경기 못지 않게 인간 육체가 만들어내는 역동적 쾌감을 객석에 전달하는 데 크게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스트리트 댄스>는, 3D 영화다. <타이탄>처럼 2D 소스를 뻥튀기한 짝퉁 3D가 아니라 처음부터 3D로 촬영된 진짜 3D다. 3D가 모험 판타지 영화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는 즈음에 이 영화의 출현은 신선하다. 춤 동작의 역동성에 3D적 입체감을 부여하는 데 성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입체적 역동성은 힙합 댄서들의 군무 장면에서 빛을 발한다. 특히 댄서가 팀의 뒤에서 앞으로 튀어 나올 때는 실제 댄스 배틀의 현장에 와 있는 듯한 생생함을 포착해 낸다.
대부분의 춤영화가 그렇듯, <스트리트 댄스>의 줄거리도 매우 간단해서 '성장'과 '로맨스'라는 익숙한 플롯의 완성을 향해 나아간다. 하지만 어쩌면 이 영화에서 이야기는 핑계다. 객석을 들썩이게 만드는 게 더 중요한 목표라고 작심한 듯, 시종일관 춤의 향연을 펼쳐 놓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힙합과 발레의 융화를 통해 색다른 움직임의 시너지를 만들어낸다. 중요한 것은 힙합과 발레가 단순히 결합하는 게 아니라 '융화'된다는 것이다. 상반된 질서의 두 동작이 뒤섞이면서 제 3의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과정이야말로, <스트리트 댄스>가 단순한 3D 영화 이상의 가치를 성취한 지점이다.
<스트리트 댄스>가 협동에 의해 창조된 새로운 동작 미학을 보여준다면, <엽문 2>는 무술영화 답게 몸과 몸의 충돌에서 빚어지는 파열적 쾌감을 안겨준다. 그러니까 <스트리트 댄스>가 융화의 미학이라면, <엽문 2>는 충돌의 미학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서양 복싱의 움직임과 동양 무술, 즉 영춘권의 움직임을 충돌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둘다 어떤 질서에 의한 움직임이라는 점에서 같은 목표 지점을 향해 나아간다.
실제 무술 고수 견자단과 홍금보의 훌륭한 퍼포먼스에 힘입어 <엽문 2>는 그 파열 지점으로부터 둔탁하면서도 정교하기 이를 데 없는 동작의 미를 추출해낸다.
1편과 마찬가지로 <엽문 2>는 보기에 따라선 약간 유치한 수준의 중화 민족주의를 드러내고 있다. 1편에서는 중국을 침략한 일본에 대한 증오가 묻어난다면, 2편에서는 홍콩을 접수한 영국에 대한 애증이 드러난다. 하지만 세밀한 무협 액션의 쾌감은 중화 민족주의에 대한 일말의 불편함을 상쇄시키고도 남는다.
목표와 질서를 부여한 움직임의 아름다움, 축구 뿐 아니라 이 두 영화를 통해서도 확인하기 바란다.
트위터: @cinemago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