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브라더스' 지옥의 이면

cinemAgora 2010. 4. 21. 17:39


두 세계가 있다. 한 세계에선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가 관건이다. 또 한 세계에서는 더 좋은 부엌을 갖고 더 단란한 생일 파티를 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이쪽에서는 오로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아둥대고, 저쪽에선 외로움을 달래줄 따뜻한 팔을 그리워한다. 이쪽은 지옥이고, 저쪽은 천국일까?  

그러나 두 세계는 동전의 양면이다. 이쪽의 입장에서 저쪽은 호강에 팔자 늘어진 세계로 보일지 모르지만 실은 두 세계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이쪽이 지옥이라면 저쪽도 천국일 리 없는 것이다.

<나의 왼발>과 <아버지의 이름으로> 등의 걸작으로 각인된 아일랜드 출신 감독 짐 쉐리단은 그의 신작 <브라더스>를 통해 그렇게 분리될 수 없는 두 세계의 살풍경을 포착한다.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됐다가 적군의 포로가 된 미 해병 장교 샘(토비 맥과이어)가 이쪽 세계라면, 그가 죽은 줄로만 알고 절망에 휩싸인 아내 그레이스(나탈리 포트만), 그리고 막 교도소에서 출소한 샘의 동생 토미(제이크 질렌할)가 저쪽 세계를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그러나 셋은 사실상 같은 전쟁에 휘말려 있다.  

영화는 포로가 된 샘의 죽을 고생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레이스와 토미가 점차 서로에게 가까워지는 과정을 교차해 보여준다. 가부장적 시선으로 본다면,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일 것이다. 남편은 생사를 오가는 사지에서 떨고 있는데, 한가롭게 남편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시동생에게 한 눈을 팔다니! 동생은 또 좀 어이 없는 녀석이냔 말이다. 아무리 형이 저세상에 갔다고 믿는다지만 형수를 넘본다는 건 언감생심일 터.


두 세계의 풍경은, 앞서 말한대로 너무나 다른 논리에 의해 전개되는 듯 보인다. 그러나 꼭 그렇지도 않다. 샘이 살아남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처럼, 그레이스와 토미 역시 그를 잃은 슬픔을 극복해야 하는, 또 다른 전쟁을 수행해야 한다.

마침내 두 전쟁은 샘의 기적적인 생환과 함께 한 공간에서 조우한다. 지옥의 문 앞까지 갔다가 겨우 살아 돌아온 장본인은 샘이지만, 그의 몸에 어른거리는 죽음의 그림자는 이 가족들 안에 새로운 전쟁을 선포한다. 전쟁의 악취는, 전장을 벗어나서도 진동하기 마련이다.

<브라더스>는 2004년에 만들어진, 같은 제목의 덴마크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이지만, 여전히 만만치 않은 공명을 만들어낸다. 그것은 이 작품이 담고 있는 전쟁의 참경이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어쩌면 불편할 수도 있는 영화다. 그런만큼 좋은 영화다. 5월 5일 개봉.

덧붙임) '스파이더맨'의 껍질을 벗은 토비 맥과이어와 <브로크백 마운틴>의 제이크 질렌할, 그리고 나탈리 포트만 삼각 편대의 연기 앙상블은, 특히 후반부에 접어들며 압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