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그린존' 알싸한 두통 유발 영화

cinemAgora 2010. 3. 29. 18:42

<그린 존> 같은 영화를 보다 보면, 나는 두통이 생긴다. 폴 그린그래스 특유의, 정신 없이 흔들리는 핸드 헬드 카메라의 움직임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용감한 자기 고발 정신에 그만 뒷덜미가 아득해지는 것이다. 뭐랄까, 알싸한 두통 같은 것? 그러니 그건 고통이되 쾌감이다. 비슷한 느낌을 안겨준 영화로 역시 맷 데이먼이 나왔던 <시리아나>(2005)나 디카프리오가 주연한 <블러드 다이아몬드>(2007) 등이 있었다.

이라크 전의 정당성을 설파했던 미국 보수 사회로선 이 영화 <그린 존>이 불편한 영화임에 틀림 없다. 미필적으로, 또한 본능적으로 그 전쟁에 애국적 지지를 보냈던 적지 않은 미국인들로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불편하더라도 진실은 진실이다. 그리고 그 진실은 사담 후세인 제거를 위해 이라크를 침공한 미국이 명분으로 내세웠던 대량살상무기(WMD)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린 존>은, 말하자면 그 불편한 진실을 극화한 전쟁 스릴러다. 이미 전세계인들이 다 알고 있는 그 진실을, 그리하여 부시 정권에 망신을 안겼지만 뒤따른 일방주의까진 막지 못한 그 진실을, 누군가는 이제 와서 영화로 옮긴다는 게 무슨 의미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추악한 진실일수록 되풀이해 말해야 한다. 이미 베를린영화제 금곰상을 받은 <블러디 선데이>(2002)로 1972년 북아일랜드 유혈 사태를 일으킨 영국 경찰의 과오를 되짚었던 폴 그린그래스로서는, 워싱턴 포스트 기자의 논픽션을 원작 삼은 이 소재가 결코 구시대적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음에 틀림 없다.
 
긴장감 넘치는 핸드 헬드 화면을 만들어내는 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폴 그린그래스는 이번에는 전작 <본 얼티메이텀>에서 보여줬던 속도감을 유지하되, 전쟁의 상흔이 할퀸 바그다드의 살풍경을 리얼하게 포착해 내는 데 게으르지 않다. 그리하여 관객을 이 현기증나는 전쟁의 한복판, 그 모순의 한 가운데로 거칠게 안내한다.
이 지점에서 감독은 전쟁 액션 특유의 둔탁한 쾌감이, 단순히 시청각적 쾌감으로 증발되지 않도록, 앞서 말한 진실의 추악한 이면이 드러나는 과정에서의 분노까지 실어 나르기 위해 애를 쓴 흔적이 역력하다. 카메라는 폭격을 맞아 흉물스럽게 무너져 내린 바드다드 시내의 풍경과 물을 달라 외치는 시민들의 모습을 비춘 뒤, 그린 존 안에서 여유롭게 수영을 즐기는 점령군의 풍경을 대조시키며 이 전쟁이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를 의미심장하게 묻는다.

물론 <그린 존>은 진실 추구 세력을 미국 CIA 국장과 특수대 장교로 설정함으로써 여전히 미국 안에 일말의 양심이 남아 있다는 위안을 선물하는, 일종의 대중영화적 타협을 잊지 않는다. 그러나 불편하더라도 진실을 정면으로 바라보려는 영화의 태도 때문에 흔쾌히 용서가 된다. 이 정도 알싸한 두통이라면 더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