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인디 에어' 쿨한 삶이 가능할까?
cinemAgora
2010. 3. 23. 11:03
사람의 마음이란 게 참 간사하다. 내 것보다 남의 것이 더 예쁘고 커 보인다. 하나의 욕망을 충족시키면 또 다른 욕망이 슬쩍 고개를 든다. 거꾸로 자신만의 견고한 성에 갇혀, 자신의 삶이 정당하고 온전하다고 믿어 버리는 사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그 어떤 가능성도 차단한 채, 말하자면 인생론적 도그마에 빠져, 다른 삶의 방식에 무관심하거나 무시해 버린다.
<인디에어>의 주인공 라이언 빙엄도 그런 인간이다. 기업을 대신해 해고를 통보하는 게 직업인 이 자는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느라 차라리 비행기 안이 집처럼 편안한 사람이다. 직업이 인생관에도 영향을 미친 탓인지, 그는 어느 한군데 정착하거나 서로에게 의존하는 인간 관계의 굴레를 버거워한다. 지지고 볶는 것은 딱 질색이다. 쿨하게 해고 통보를 하듯, 자신의 삶도 쿨하다고 믿는다.
그런데 어느날 여기에 균열이 일어난다. 두 명의 여성의 그의 삶에 문득 끼어들면서부터다. 코넬대 과수석에 빛나는 가방끈을 내팽겨치고 남친 따라 강남 온 낭만파 신참 내기 나탈리, 그리고 출장 때마다 가끔 만나 쿨하게 즐기는 매력녀 알렉스다. 당돌한 나탈리는 마일리지를 모으는 게 인생의 목표인 라이언의 삶의 방식에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다. 견고할 줄만 알았던 그의 철옹성에 화살이 박힌다. 그리고 그 화살은 알렉스에 대한 예기치 않은 감정과 뒤섞이며 폭탄이 된다. 성문이 열린다.
라이언에게 쿨하다는 건 뭘까. 결국 그건 인간 관계가 필연적으로 안겨주는 너저분하고도 무거운 굴레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방어기제일 것이다. 대신 호텔 VIP 카드와 마일리지에 집착하는 라이언의 삶은 처량맞다. 외면하려 해도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근원적 외로움, 관계가 아닌 상태를 즐기는 쿨한 연애로는 도저히 채울 수 없는 그 외로움 앞에 그도 무력한 인간일 뿐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인디에어>가 지지고 볶는 한이 있더라도 사람과 사람간의 끈적한 관계 안에서 행복을 느끼라고 설파하는 영화는 아니다. 이 영화의 미덕은 그 두가지 가능성을 툭 제시하는 가운데, 관객들 스스로 어떤 삶이 더 행복한 것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힘에 있다. 부유하는 쿨한 삶과 정착하는 끈적한 삶, 어느 곳에도 행과 불행이 교차하겠지만 선택은 결국 우리의 몫으로 남는다.
<주노>의 제이슨 라이트먼의 담백한 연출과 조지 클루니, 베라 파미가(김진아 감독의 한국영화 <두번째 사랑>에서 하정우의 상대역으로 출연한 바 있다), 안나 케드릭 삼각 편대의 연기조합이 일품이다. 음악은 압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