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육혈포 강도단' 엉성해도 미워할 수 없는 코미디

cinemAgora 2010. 3. 21. 17:05

만듦새에 허점이 보여도, 이야기의 밀도가 떨어지고 엉성해도 빠져들게 만드는 영화가 있다. 지난 달에 <하모니>가 그랬다면 이번 달엔 <육혈포 강도단>이 내겐 그런 영화다. 그러고 보니 두 영화의 장르는 180도 다르지만 괜시리 닮은 구석이 많다. 핍박받는 모성의 풍경을 전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고, 무엇보다 두 영화 모두 나문희가 나온다.

<하모니>도 중반 이후 관객을 울리려는 강박적 전개에 눈물과 한숨이 동반 배출됐는데, <육혈포 강도단>도 막상 영화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은행 강도 상황이 본격화하는 중반부터 맥이 빠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미워할 수가 없으니 참 이상한 일이다.

그렇다. 그건 영화의 힘이 아니라 현실의 힘 때문이다. 관객들이 공유하는 현실의 궁핍함이 자동연산적으로, 세 할머니의 눈물 겨운 고군분투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것이다.

<육혈포 강도단> 같은 영화를 보고 '저런 상황이 과연 벌어질 수 있겠어?'라며 드라마적 개연성의 문제를 들고 나온다면 한참 모자란 평가 방식일 것이다. 이 영화는 그냥 그렇게라도 세상을 뒤집어 버리고 싶은, 육체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이 세계에서 가장 무기력한 이들의 억하심정을 가상의 현실을 통해 드러내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가상을 존재하게 만드는 전제에 수긍하느냐일 것이다.

젊은이들이야 '88만 원 세대'론에 힘입어 관심이라도 얻지, 아파트 경비실에서, 거리의 공영주차장에서, 꼬박 밤을 새우는 중노동에 최저생계비를 겨우 넘기는 임금을 받고도 혹시라도 잘릴까 전전긍긍하는 노년 비정규 노동자들의 척박한 삶은, 사회적 관심사의 범주 안에 좀처럼 포획되지 못한다. 게다가 이들 중 많은 이들이 대물림된 가난으로 인해 자식들로부터의 부양 혜택도 기대할 수 없다는 차가운 현실도.

<육혈포 강도단>에 나오는 세 할머니는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이 앙증맞은 슈퍼마켓 절도 행각에 힘입어, 기껏 하와이 동반 여행을 꿈꾸는 상황이 역설적으로 눈물 겹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으며 앞으로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게 됐음을 깨달았을 때, 그들은 그저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가장 찬란한 순간을 공유하고 싶을 뿐이다. 그러나 사회는 그 꿈마저 강탈해가는 데 결코 인색하지 않다.

이 영화의 진정성은 할머니들의 일탈적 해프닝을 가정해 그같은 현실을 상기시키려는 데서 찾아진다. 다만 극적 상황에 좀더 설득력을 배가했다면 그 진정성이 고스란히 전달됐을 터인데, 세 할머니(아니 누님들!)를 연기한 나문희, 김수미, 김혜옥의 연기를 못쫓아가는 연출력이 아쉽기만 했다. 다른 건 몰라도 세 중견 배우의 연기에는 기립박수라도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