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언 에듀케이션' 일탈의 교육적 효과
cinemAgora
2010. 3. 19. 15:39
때론 학교 바깥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울 때가 있다. 물론 그런 가능성은 아이들을 최대한 오랜 시간 동안 학교 울타리와 학원에 가둬 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입시 위주의 경쟁 교육 시스템에서는 점점 협소해지고 있지만 말이다. 가끔 저러다 큰일 낼 것처럼 삐뚤어진 아이들이 어른이 된 뒤 훨씬 더 잘 나가고 있음을 발견할 때도 있다. 교육은, 이 사회가 '교육'이라고 틀 지어 놓은 제도 바깥에도 존재할 수 있다.
(굳이 번역하면 '어떤 교육' 정도의 제목이 될) 영화 <언 에듀케이션>의 여주인공이 처한 상황도 마찬가지다. 제니는 학교에서 제일 똘똘해 옥스포드 대학 진학을 노리고 있는 17살 소녀지만 학교와 집을 오가는 쳇바퀴 같은 생활이 지겹다. 그녀는 생각한다. 열나게 공부해서 옥스포드에 가고, 그래서 남는 건? 부모님의 희망대로 스펙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해 현모양처가 되는 것? 게다가 캠브릿지를 나온 영어 선생님도 지루해 보이긴 마찬가지다. 기껏 저런 미래를 위해 나의 현재를 희생하라고? 제니는 현실이 갑갑하다.
그런 와중에 눈이 번쩍 뜨일 훈남 데이빗이 그녀에게 다가온다. 부동산 사업자인 그는 멋진 차를 가진데다 신나게 산다. 입담도 좋고 유머 감각도 짱이다! 다만 나이가 좀 많다는 것 말고는. 부모님도 대충 눈감아주는 분위기 속에서 제니는 데이빗과 시나브로 연인 사이로 발전한다. 학교에서는 그녀의 위험천만한 연애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지만 그녀는 데이빗과의 결혼까지 꿈꾼다. 뭐 어때? 어차피 옥스포드 가도 목표가 결혼이라면 괜찮은 남자가 나타났을 때 미리 해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그러나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고 사랑은 기만과 상통한다는 것을, 제니는 뒤늦게 깨닫는다. 물은 이미 엎질러 졌지만, 그녀의 조금 이른 로맨스는 제니로 하여금 막연한 미래를 더욱 구체적으로 붙잡아 매도록 도와준다. 그러니 그녀의 이 비교육적인 일탈은, 종국엔 그 어떤 스승이나 어른들의 훈계를 뛰어 넘는 강력한 교육 효과를 발휘한 셈이다.
이것이 여성 저널리스트 린 바버의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가 아니라면 <언 에듀케이션>은 그다지 설득력 있는 성장 드라마로 여겨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1960년대 런던이라는 시공간적 배경과 제니의 가정 환경은, 이 원조교제적 상황도 이해 가능의 영역 안에 품고 간다. 더구나 제니가 학교 바깥에서 경험하는 산 교육은, 입시라는 맹목을 향해 아이들을 몰고가는 학교 교육의 맹점을 슬쩍 드러낸다는 점에서, 우리로서도 곱씹을 여지가 꽤 있다.
성숙하게 사랑하는 법, 이것은 도저히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