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어머니는 왜 교도소에 갇혔을까
cinemAgora
2010. 2. 20. 23:43
*스포일러라고 불만을 토로할 내용이 포함돼 있는 것 같습니다.
뒤늦게 영화 <하모니>를 봤다. 왠만한 기대작은 시사회에서 보거나 놓쳤다면 개봉 첫주말에는 챙겨 보는 게 습관인데, 이 영화만큼은 왠지 끌리지 않았다. 뻔하디 뻔한 최루성 신파 모성 멜로일 게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한데 먼저 본 지인들의 반응이 썩 나쁘지 않았다. 게다가 흥행도 꽤 괜찮아서 내가 편견을 가진 건가 싶어져 늦게나마 확인차 티켓을 샀던 것이다.
막상 보니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한치도 어긋나지 않는 신파 멜로의 공식 그대로다. 초반 10분 정도의 정보로도 누가 어떻게 될 것인지 훤히 보인다. 눈물샘을 자극하는 포인트까지 꿰맞춘 듯 기성품이다. 자신의 정체가 또 한편의 눈물 서비스라는 걸 잘 알고 있는 영화는, 영악하게도 모성을 격리해 놓고 울리고 또 울린다.
하도 울려대니 약간 어설픈 공연 시퀀스와 동기가 빈약한 비약, 죄수복으로까지 주조연을 가리는 천박함, 애써 캐스팅한 뮤지컬 배우들의 가창력을 홀대하고 립싱크로까지 주연을 접대하는 얄팍함마저 슬쩍 가려질 정도다.
영화의 밑천이 훤히 드러나 보여 몸이 꼬일 무렵, 희한하게도 생각의 물꼬가 약간 엉뚱한 곳으로 방향을 틀기 시작했다. 이런 의문이 들었다. 왜 하필 교도소일까. 앞서 말한대로, 그것은 모성을 격리해 애틋함을 강조하기 위한 극적 장치인 건 분명해 보이지만, 왠지 거기에 뭔가 모를 의미심장함이 곁들여있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하모니>가 대중과 통하는 접점은, 교도소에 갇혀 있는 모성이 결코 특수한 풍경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우리 시대의 현실적 모성은 철저하게 자식의 장래에 헌정돼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때문에 모성의 본질로부터 격리돼 있다.
끌어 안고 품어주는 바다는, 조바심 내고 내 자식 말고는 모든 타인을 배타시하는 협소한 개천으로 전락했다. 엄밀히 말해 그것은 모성이 아니다. 시스템에 굴복한 모성. 하자 있는 모성. 죄 짓는 모성. 기피되는 모성. 그리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교도소에 유배된 모성.
<하모니>는 정확하게 그 처연한 모성의 현주소를 진짜 밑천으로 삼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그 밑천은 원신연의 <세븐데이즈>와 봉준호의 <마더>가 드러내보였던 광기적 모성과 맥락적으로는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하모니>는 한걸음 더 나아가, 잔인하게도 모성에 대한 사형을 집행해 버린다. 사형을 선고하는 게 아니라 집행한다는게 중요하다. 모성은 이미 사형 선고를 받았다!
합창단을 이끌어오던 음대 교수 출신 사형수 나문희가 터벅 터벅 사형장으로 향하는 길에 남아 있는 죄수들, 그러니까 유배된 모성은 그를 향해 마지막 노래를 헌사한다. 나문희는 그들을 슬쩍 보며 그 의미를 구분하기 어려운 미소를 짓는다. 나는 거기서 '희망'이란 편리한 수사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것은 무기력, 유폐 상태에서 결코 헤어나올 수 있는 이 시대 어머니성의 헛헛한 자포자기로 보였던 것이다.
나문희, 그 어머니들의 어머니는 그렇게 형장으로 일말의 주저 없이 걸어가며 위대할 뻔한 모성의 죽음을 덤덤하게 최종 확인한다. 이 얼마나 잔인한 결말이란 말인가. 그 때문에 <하모니>는, 적지 않은 영화적 결함을 드러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겐 꽤 여운이 짙은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