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살고 죽음의 경제학으로 본 '2012'

cinemAgora 2009. 11. 16. 22:48

*경고-스포일러 다량 함유(영화를 보신 분들만 읽기를 권합니다.)

제목에다 '경제학'이라는 단어를 써 뭐 거창한 얘기일 것 같지만, 별 거 아니다. 나는 재난영화를 볼 때, 어떤 사람이 살고, 어떤 사람이 죽느냐를 꽤 유심히 보는 습관이 있다. 별 습관 다 있다 하실지도 모르겠지만, 특히 재난영화 같은 장르 영화가 관습을 얼마나 충실히 따르느냐 아니면 거기에서 벗어나 얼마나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느냐를 따지는 데 있어서 누가 살고 누가 죽느냐는 꽤 유효한 지표가 되기도 한다. 이 얘기를 하려다 보니 달리 특별한 단어도 떠오르지 않고 해서 뜬금없이 경제학이라는 용어를 갖다 붙인 것이다.

사실, 최근에는 재난영화 하면 다른 무엇보다 스펙터클의 규모가 주요 관심사가 되는 게 당연한 분위기다. 얼마나 대단한 볼거리를 제공하느냐가 자연스럽게 중심 화두로 떠오른다. 하지만 영화를 직접 보여주는 게 아니라 글의 소재로 삼는 입장에선, 거꾸로 별로 특별히 할 얘기가 없는 분야이기도 하다. CG 기술의 진화로 인한 시각 효과야 영화를 거듭할 수록, 시간이 지날 수록 발전하게 돼 있고, 특히나 돈을 많이 들일 수록 훌륭하게 돼 있다. 과연, <2012>도 그렇게 이전의 영화들에서 보지 못했던(당연하다! 단순한 지진이나 천재지변이 아닌, 지구가 송두리째 멸망하는 장면을 보여줘야 하는 영화 아닌가) 거대 스텍터클을 담아내는 데 공력과 돈을 아낌 없이 쏟아부은 흔적이 역력했다.

그래도 여전히 영화라면 그 감동의 액기스는 이야기에서 나온다는 믿음을 나는 버리지 못한다. 스펙터클이 전부라면, 돈의 위력 앞에 감읍하는 것이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이런 견지에서, <2012>를 바라 본다면, 한마디로 하나도 새로울 게 없는 영화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뭐가 새로운가. 지구가 멸망한다는 것 외에, 이를테면 이 영화 속 인물들의 갈등 구도나 화해의 플롯이 지난 여름 1천만 관객을 돌파한 <해운대>와 다를 바가 있을까? 소원했던 가족은 화해하고, 로맨스는 이뤄지며, 악인은 일말의 양심을 대가로 희생한다. 약속이나 한듯 판박이다. 사실 어쩔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재난영화의 공식이기 때문이다.


그 공식을 그대로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래도 뭔가 '다른' 것을 찾기 위해 시나리오가 정해 놓은 생존과 희생의 살생부를 눈여겨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누가 살고 누가 죽느냐의 문제다. 유감스럽게도 이 부분에서도 <2012>는 예상치에서 단 한걸음도 벗어나지 못한다. 이를테면 재난영화의 걸작 <포세이돈 어드벤처>의 후반부 장면에서 일행을 이끌어오던 신부가 장엄한 희생을 선보이는 것과 같은, 당시로서는 꽤 충격적이었던 반전은, <2012>에는 없다. 한마디로, 살 사람 살고 죽을 사람 죽는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 주인공 살고, 주인공이 사랑하는 사람들 다 살고, 그밖의 잔챙이들 죽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좀 많이 껄쩍지근하다. 무너져 가는 미국 땅에서 어렵사리 수송기를 섭외해 주인공 가족을 저 멀리 중국까지 실어 나르며 불굴의 투혼을 보여준 러시아 젊은이는, 결국 자신과는 아무런 관련 없는 이들을 살려 내고 무참하게 죽는다. 어쩌다 이들 가족과 생사고락을 함께 한 러시아 거부의 정부도 다른 이들 다 사는 데 혼자 물에 빠져 죽는다. 싹수머리 없는 러시아 거부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그래도 어린 아들들만큼은 살려 놓고 희생한다. 조카를 살려 놓고 희생한 <해운대>의 송재호처럼 말이다. 주인공 잭슨(존 쿠삭)의 전처의 현재 남편이자, 잭슨의 아들 노아가 아주 좋아하는 새 아빠도 비행기까지 조정하며 엄청난 공헌을 하지만 끝내 희생자 대열에 합류한다. 그들의 희생 끝에 잭슨 가족은 예의 평화롭고도 안온한 생존의 선물을 함께 기뻐하며 부둥켜 안는다.


어이 없게도, 이 지점에선 이런 의문이 든다. 잭슨이 이혼한 전처와의 사랑을 재확인하고, 그의 자녀들과 다시 가족으로 의기투합하게 된 계기는 지구 멸망이라는 재난일까, 아니면 전처 남편의 죽음일까. 둘 다일지도 모른다. 여하튼 영화는 가족 화해라는 플롯을 기어이 완성시키기 위해 그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이들을 모조리 죽이는 잔인함을 가족 휴먼 드라마의 외양 뒤에 슬쩍 감춘다.

왜 잭슨이나 전처, 자식들은 단 한 명도 희생당하지 않는가. 말할 것도 없이 그들이 관객들의 감정이입 대상이며 바로 그 관객들의 얼터 에고는 끝까지 안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관습적인 재난영화 속의 재난은 끝내 재난이 아닌 롤러코스터일 뿐인 것이다. 경제적으로 유효하지 않은 조역들을 재난의 이름으로 살육함으로써 안전의 경제를 실현하는 롤러코스터 게임. <2012>는 그 익숙한 롤러코스터에 "인류 멸망"이라는 더 거창한 이름과 배경막을 걸어 넣고 한 장사 잘하고 있는, 할리우드 테마파크의 초겨울 이벤트인 셈이다.

덧붙임 #1 영화 중 지질학자 애드리언이 자신의 아버지가 탄 유람선의 위치를 탐색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엔지니어는 그의 아버지가 일본해협에 있다고 말한다. GPS 추적 화면에 표시된 유람선의 위치는 동해였다.  

덧붙임 #2 'G8' 국가에 포함돼 있지 않은 중국도 들어간 '노아의 방주' 안에 한국 대통령은 포함돼 있지 않다. 미국 대통령과 이탈리아 총리처럼 그도 국민들과 함께 장엄한 최후를 맞이한 걸까? 왠지 그렇게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