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트릭스' 우연과 행운의 변증법

cinemAgora 2009. 11. 9. 22:44


자신의 삶에 행운이 깃들기를 바라는 건 인지상정이다. 이것을 거꾸로 말하면,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의 삶이 불운하다고 느끼고 있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모르긴 몰라도, 내 삶은 왜 이렇게 행운의 연속인지 모르겠어 하며 행복에 겨워하는 이들보다, 왜 나만 이렇게 불운한거야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이번 주말 개봉하는 폴란드 영화 <트릭스>는 그렇게 우리 인생에 틈입하는 행운과 불운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주인공 소년 스테펙은 어릴 적 떠난 아버지를 만나길 소원하고, 누나 엘카는 어렵사리 면접 자리를 얻은 회사에 채용되기를 소원한다. 동심의 세계에 빠져 있는 스테펙은 소원이 그냥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안다. 그래서 그는 트릭을 쓴다. 기차 길에 장난감 병정을 세워놓고 기차가 지나갈 때 쓰러지는지 서있는지를 보고 운수를 점친다. 철로 위에 동전을 뿌리면 소원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과연, 어느날 빛 바랜 사진 속의 아빠와 똑 닮은 남자를 기차 역에서 만나고, 스테펙은 그 남자가 자신의 아빠가 틀림 없다고 확신한다. 그가 엄마와 자신들을 다시 찾아줄 것을 소원하지만, 과연 어떻게 그 소원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이런 반면, 누나는 불운의 연속이다. 골칫덩어리 동생이 자꾸 속을 썩이는 바람에 번번이 면접 시간에 지각을 해 난처한 상황에 빠진다. 얼마나 원했던 일자리인데, 속이 터지지만 뭔가 모자란동생을 외면할 수가 없다. 이런 가운데 스테펙은 아버지를 엄마와 만나게 하기 위해 모종의 음모를 실천에 옮기고, 엘카도 그 음모에 휘말린다.


기차길이 마을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고, 비둘기가 평화롭게 날아다니는 폴란드 중소 도시의 소박한 정경을 배경 삼은 <트릭스>는 그 배경만큼이나 소박한 영화다. 남매의 작은 소동극을 통해 우연의 갈피가 어떻게 행운으로도, 불운으로도 이어질 수 있는지를 거창하지 않은 화법으로 보여준다.

영화에 따르면, 행운은 그냥 찾아오는 게 아니다. 스테펙이 행운을 거머쥐는 방식은, 결국 장난감 병정을 세우거나 동전을 뿌리는 게 아니라, 아빠 용의자(?)가 다음 기차를 못 타고 마을에 남도록 교묘하게 감금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작은 트릭은 마치 나비효과처럼, 또 다른 우연의 도미노를 만들어내며 행운을 필연으로 수렴한다.

영화 중반에 이런 인상적인 장면이 나온다. 남매는 마트 옆의 과일 장수가 온 종일 파리를 날리고 있는 게 안쓰럽다. 누나 엘카가 슬쩍 쇼핑 카트를 과일 장수 옆에 가져다 놓는다. 사람들은 그곳이 카트를 놓는 자리인 줄 알고 몰려들고, 자연스레 그 옆의 과일을 사게 된다. 순식간에 과일이 동난다.

행운은 자동발생하지 않는다. 우연은 그저 우연이 아니다. 모든 종류의 행운은 결코 거창하지 않지만 분명한 목적성을 지닌 어떤 '행동'에 의해 실현 확률을 높인다. 모든 종류의 필연은 숱한 우연의 씨줄과 날줄 사이에서도 질서를 희망하는 어떤 '의지'에 의해 발화 확률을 높인다. 바로 그런, 우리 삶에 대한 소박하지만 힘 있는, 낙관적 통찰이 <트릭스>에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