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탁's 뮤직라이프

최근 발매 음반들에 대한 별점과 짧은 평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9. 28. 00:55

Pearl Jam <Backspacer> - ★★★★
이 앨범에는 덜 조여진 나사 하나 없다. 힘이 넘치면서도 넓고 유려하다. 대가만이 묘사할 수 있는 여유와 관조까지 넉넉히 갖췄으면서도 사회를 향한 날카로운 눈매를 잊지 않는다. 여기에 절정에 다다른 밴드 하모니까지 정확하고 품이 깊은 이 작품은 2009년 록 계의 ‘토템 폴’(totem pole)에서 당당히 맨 윗단을 차지할 것이다.

13 스텝스 <Existence> - ★★★
한국 하드코어 신이 음악적으로 죽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쾌작. 'Runner's High'로 일관하는 격렬한 연주 하모니가 듣는 이의 넋을 쏙 빼놓는다. 앞으로 섬세한 구성미만 갖춘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듯. 

G-Dragon <Heartbreaker> - ★★☆
특출하다 말하기 어려운 음악적 성취에 비해 너무 과도한 피드백들. (표절 여부를 떠나) 게으른 창작이 야기했던 수많은 논쟁들. 테크놀로지의 과잉이 낳은 컨텐츠의 부재. 결국 한국 가요계의 문제점을 압축적으로 전시해준 2009년의 우울한 발견.  

Placebo <Battle For The Sun> - ★★★☆
여전히 어둡고 여전히 격렬하며 여전히 매혹적이다. 강렬한 파토스(pathos)가 지배하는 이 앨범은 유유히 흐르는 강물이 아닌 밑바닥이 보이지 않는 우물 13개를 지닌 작품이다. 그러나 끝이 없을 것 같은 우물 속 과녁을 끝끝내 찾아내 그 핵심을 맞춰버리는 놀라운 집중력의 앨범이기도 하다. 이처럼 개별 곡마다의 정중앙에 진한 방점을 찍어나가는 방법론을 통해 플라시보는 자신들의 디스코그라피에서 가장 인상적인 구두점을 하나 그려냈다. 

홍경민 <Someday> - ★★★
어쿠스틱으로 전향해 톤을 낮추고 볼륨도 줄였다. 세월이 녹아든 담백한 사운드의 첫인상이 그리 나쁘지 않다. 그러나 너무 힘을 빼다보니 전체적으로 고만고만한 트랙들 일색이 되어버렸다. 그 사이에서 돋을새김으로 방점을 찍을 킬러 싱글만 있었더라도 인상이 확 달라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뚝심 있게 자기만의 영역 찾고자 하는 노력은 평가받아야할 앨범이다. 

크라잉넛 <불편한 파티> - ★★★☆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안다는 것은 중요하다. 크라잉넛은 이걸 아주 잘 알고 있는 그룹이다. 후련한 펑크 록 사운드, 싸구려 같아서 더욱 애절하게 다가오는 유랑단적 감수성. 전자가 단단한 리듬의 뼈대를 형성한다면 후자는 크라잉넛만의 독특한 멜로디 라인과 가사를 만들어낸다. 이번 음반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잘 알고 있고, 우리도 잘 알고 있는 바로 그 크라잉넛이다. 그러면서도 전혀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10년 이상 단련된 밴드 하모니가 모든 곡에서 완숙의 경지를 뽐내는 덕분이다. 이번에도 역시, 이 노래들을 공연장에서 들을 날이 기다려진다.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크라잉넛은 이 앨범을 통해 공연장에서 다가올 완성형을 모색하고 있다. 그래서 (앨범의 평점과 상관없이) 공연장에서의 그들은 언제나 10점 만점에 10점이다.
                                                                                             posted by 순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