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머 워즈> 게임 속으로 들어간 나우시카
애니메이터 호소다 마모루를 일본에서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적자'라고들 부른단다. 과연 그의 눈부신 걸작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선 왠지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여주인공 캐릭터와 닮은 구석이 엿보이긴 했다. 하지만 미야자키가 말년에 다가갈수록 점점 더 유아적 상상력의 세계로 빠져들어가는 것과 달리, 호소다 마모루는 이 시대의 감수성을 맹렬하게 껴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니까 이 재능있는 젊은 애니메이터는 미야자키를 계승하되, 자기만의 색깔을 뚜렷하게 새겨 넣는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서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점프라는 설정을 딱 여고생의 감수성으로 담아낸 그는, 이번 신작 <썸머 워즈>에서 '네트워크'를 모험과 청춘 드라마의 중요 무대로 끌어들인다. 사람들은 모두 게임과 휴대폰을 통해 'OZ'라는 가상 공간의 아바타와 어카운트를 가지고 있다. 어느날 정체 불명의 해킹 A.I.가 나타나 네트워크 세계를 혼란에 빠뜨린다. 그뿐 아니라 현실 세계를 마비시키는 상황에까지 이른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지구가 위협에 빠진다. 가상의 가상이라 더 현실적인걸까? <썸머워즈>가 그리는 가상 공간의 위기는 얼마전 DDoS 테러를 경험한 바 있는 우리로서도 남의 일처럼 보이지 않는다.
어쨌든 이 만화적 과장의 세계에서 구세주는 예의 소년과 소녀다. 수학 천재이자 여주인공 나츠키의 과학부 후배인 겐지가 먼저 나서지만 역부족이다. 결국 나츠키가 컴퓨터 게임 속으로 뛰어들어 회심의 정면 승부를 펼친다. 지구의 운명을 걸고, 네트워크를 점령한 악마와의 한판 대결이 벌어진다.
어쩌면 지나치게 장난스러워 보이는 영화 후반의 위기 장면에서 호소다 마모루의 젊은 치기가 느껴지는 한편, 그가 과연 미야자키 하야오의 적자인 게 맞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테면 해킹 A.I.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 등장하는 거신병을 닮았다. 혹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카오나시 같기도 하다. 미야자키는 그들 캐릭터를 인간의 탐욕이 부른 환경 재앙의 돌연변이 괴물로 묘사했지만, 호소다는 그걸 네트워크의 편리성 뒤에 가려진 가공할 위협으로 탈바꿈시킨다. 그렇다면 나츠키는 네트워크 세대의 나우시카인 셈이다.
이 앙증맞은 모험극에서 호소다 마모루는 일본적인 가족주의와 청춘 드라마 특유의 멜로 라인을 엮어 놓는 걸 잊지 않는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지구를 구하겠다고 잔뜩 진지한 표정으로 게임기를 붙들고 있는 표정들이 귀엽다. 나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긴장과 폭소가 씨줄과 날줄처럼 치밀하게 교차한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힘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