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약속해줘!> 가혹한 현실의 축제

cinemAgora 2009. 8. 12. 16:07

이른바 '마술적 리얼리즘'의 대가로 알려진 에밀 쿠스트리차의 신작이 이번주 개봉한다. 제목은 <약속해줘!>. 할리우드 대중영화의 관습을 멀찌감치 비껴나 있는데다, 우리로선 생경한 세르비아를 배경으로 한 영화인만큼, 결정적으로 걸리는 스크린수가 그리 많지 않을 게 분명한 만큼, 이 영화가 흥행할 것이라고 예상하긴 어렵다. 때문에 영화와 관련한 이 포스트도 그리 관심을 얻진 못할 게 틀림 없다. 그럼에도 기록할만한 가치를 내뿜는 영화임에 분명하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두 차례나 받은 에밀 쿠스트리차의 영화 세계를 전작들을 들먹이며 시시콜콜 소개하고 싶지는 않다. (솔직히 잘 모르기도 하고.) 그게 이 영화를 제대로 감상하거나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거니와 오히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세르비아에 대한 기본 상식을 알고 보는 게 훨씬 더 중요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세르비아적 정서를 가늠하지 못한다면, 신부감을 찾기 위해 도시에 나온 시골 소년의 모험극을 담고 있는 이 영화는 한마디로 우스꽝스러운 농담 영화가 된다. 아무리 마술적 리얼리즘이라지만 시종 일관 하늘을 날아다니는 인간 포탄이라든가, 애들 장난 같은 총격전 장면에선 실소가 터져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영화 속의 모든 인물들은 과장돼 있고, 장난기로 가득차 있으며 선인이든 악당이든 사람들은 모두 흥에 겨워 있다.

감독은 영화를 왜 이 따위로 만들었을까. 이란 영화 <천국의 아이들>처럼 착하고 순박한 주인공이 모진 시련을 극복하는 과정을 감동적인 톤으로 그렸다면 더 많은 관객들의 지지를 얻었을텐데 말이다. 그 단초를 얻기 위해 세르비아의 현대사를 슬쩍 엿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유고슬라비아 왕국은 1941년, 나치 독일에 의해 점령당했으며 나치에 협력한 크로아티아인에 의해 세르비아인에 대한 학살이 이루어졌다. 소련군의 지원 아래에 1943년에 영토를 수복, 이 땅에 사회주의 공화국이 세워졌다(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티토사후 동구의 민주화혁명 및 민족주의의 대두에 따라 1992년, 슬로베니아 / 크로아티아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 마케도니아 공화국이 차례로 유고슬라비아에서 분리독립을 선언하였으며, 연방의 중추적 국가였던 세르비아가 이에 반발하여, 특히 인접한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인이 많이 살고 있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의 전쟁은 2차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의 전쟁이었다. 이 과정에서 민족 정화 등 많은 반인륜적 잔혹행위가 저질러졌고, 나토와 미국의 군사개입이 있었다. 2003년 2월에는 신 유고 연방마저 해체하여 세르비아 몬테네그로가 되었으나, 2006년 5월 몬테네그로가 분리 독립 투표에서 독립 찬성률이 55.4%로 독립이 가결되었다. 같은 해 6월 4일에는 몬테네그로 의회가 독립을 공식 선언함으로써 '세르비아 몬테네그로'가 해체, 세르비아 공화국과 몬테네그로 공화국으로 분리되었다. 한편, 세르비아는 2006년부터 프랑코포니의 참관국이 되었다. 2007년 1월 21일에는 코소보의 운명을 결정할 총선이 시작되었다. 이 총선에서 세르비아 급진당이 승리하였으나 과반수를 달성하지는 못했다. 2008년 2월 17일 코소보는 세르비아에서 분리독립을 선언하였다. - 위키 백과


아마도 근래 세르비아와 관련해 신문지상에 가장 많이 등장한 건 '코소보 사태'일 것이다.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연상어는 '인종 청소' 또는 '민족 정화'다. 직접 목격할 수는 없었지만, 지난한 살육과 내전이 이들에게 얼마나 거대한 상처를 남겼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과연, <약속해줘!>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총을 쏴대고 사람을 죽이고 꼬마가 어른을 거세하는 장면이 나온다. 뉴욕에는 이미 사라져 버린 쌍둥이 빌딩을 세우겠다는 야심을 지닌 조폭 보스가 선량한 사람들을 괴롭히거나 착취한다. 툭하면 "아메리카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야" 하며 미국을 극도로 신성시하는 그는, 소년 차네가 첫 눈에 반한 여주인공을 납치해 몸을 팔라고 강요한다. 신부감을 지키려는 소년과 악당들의 전쟁이 시작된다. 총알과 폭탄이 난무한다.

표면적으로는 참 암울한 상황이다. 그런데 쿠스트리차는 이런 암울한 상황을 시끌벅적한 소동극으로 변질시킨다. 주인공 소년과 그의 신부감을 뺀 인물들을 모두 극도로 회화화해 놓고, 도리어 축제의 신명을 뽑아낸다. 총알이 빗발치는 와중에 악단은 흥겨운 연주를 멈추지 않는다. 마치 전쟁이 축제라도 된 것처럼.

마른 사막에도 선인장이 자라듯, 영화 <약속해줘!>는 절망의 순간에도 끝내 멈추지 않는 사랑과 유희의 본능을 극대화한다. 그것이 이 잔인한 현실을 이겨낼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니, 우리 이렇게 총알이 빗발쳐도, 언제 목숨이 날아갈지 몰라도, 이 순간만큼은 행복하게 즐기자고 위안하는 것 같다.

모든 판타지는 현실의 잔혹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현실이 가혹할 수록 판타지는 더 멀리 나간다. <판의 미로>의 소녀처럼 꿈으로 도망치지 않으면 견디기가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에밀 쿠스트리차의 마술적 리얼리즘은, 의도적인 얼토당토 않음으로 아픈 현실을 상기시킨다. "이건 영화야, 이건 영화일 뿐이라고!"라고 애써 강조하는 그의 영화는, 그래서 오히려 더 슬픈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