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의 시절을 검게 물들인 금단의 열매
초등학교 5학년 때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미국 출장을 다녀오신 아버지가 선물로 테이프를 하나 사오셨다. “지금 제일 잘 나가는 뮤지션의 음반 하나 주세요.” 레코드 가게 점원에게 얘기했더니, 이 앨범을 추천했다고 하면서 나에게 건네주셨다. 때는 1988년.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Bad] 앨범이 지구촌을 휩쓸고 있을 시절이었다.
아버지에게 받자마자, 카세트 플레이어에 앨범을 플레이했다. 처음 보는 흑인이 ‘배드~배드~나빠~나빠~’하는데, 뭐가 나쁘다는 건지 초등학교 5학년생이 알아먹을 리가 만무했다. 심지어 4번 트랙 ‘Liberian Girl’은 너무 야하기까지 했다. 여성의 끙끙대는 신음소리가 계속 들리는데, 이걸 계속 들어야 되나 말아야 되나 심각하게 고민했을 정도였다.
그리고 TV로 영상을 봤다. 공연 실황이었다.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마이클 잭슨의 패션은 항상 하반신에 정조대 비슷한 걸 강조하는 게 특징이었다. 그 부분이 유독 반짝거리는 것까진 괜찮았다. 그런데, 춤을 출 때마다 유사(類似) 정조대 부분에 위치한 자신의 급소를 계속 만지작거리는 게 거슬렸다. 도저히 부모님과 함께 볼 수 있는 수위가 아니었다. 그래서 부모님이 없을 때마다 몰래 혼자서 봤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잊을 만하면 ‘아~ 씁~’하면서 거친 숨을 내뱉는 마이클 잭슨의 목소리도 문제였다. 당시 다녔던 교회 목사님이 ‘마이클 잭슨은 악마’라면서 ‘들으면 지옥불에 떨어질 것’이라고 왜 말씀하셨는지 알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그 목사님에게는 대중음악이라는 문화 자체가 사탄의 표상이었던 거였다. 심지어 이 분은 ‘뉴에이지(New Age)는 마귀의 자식’이라며 조지 윈스턴(George Winston)의 [December] 앨범 화형식까지 거행하셨던 적도 있었다. 참, 대단한 분이셨다.
이렇게 마이클 잭슨의 음악은 마치 내가 아담이라도 된 듯, 금단의 열매로 다가왔다. 그 땐, 나름 충실한 기독교 신자여서 이 괴상한 음악을 그만 들을까 말까 고민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이 끝내주는 음악을 거부하긴 어려웠다. 그래서 걸작 [Thriller]을 찾아들었고, ‘Billie Jean’의 문워크 댄스와 밴 헤일런(Van Halen)이 연주한 ‘Beat It’의 기타 연주에 넋을 잃었다. [Dangerous] 음반도 대단했다. 건스 앤 로지스(Guns N' Roses)의 기타리스트 슬래시(Slash)가 연주한 ‘Black Or White’와 ‘Give In To Me’는 물론이고, ‘Will You Be There’를 듣고는 역사상 가장 완벽한 ‘가스펠 팝’이라고까지 생각했다.
그러나 어린 시절에는 내가 느끼고 있는 마이클 잭슨의 매력이 뭔지를 잘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 때까지 들은 거라곤 찬송가나 팝과는 거리가 먼 가요들밖에 없었으니, 마이클 잭슨 음악의 요체를 파악할리가 만무했던 것이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여러 음악을 듣고 나니,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완벽한 사운드의 황홀경, 환상적인 리듬 잔치, 잭슨 파이브 때부터 단련된 빼어난 가창력, 중력을 거부한 경이적인 댄서, 흑인의 자부심을 일깨운 최고의 팝스타 등등등.
이상한 일이다. 말발은 이렇게 확 늘었는데, 어린 시절 그의 음악을 들으며 느꼈던 두근거림을 이제 더는 느낄 수가 없다. 마이클 잭슨뿐만이 아니다. 매달 밥을 굶어가며 CD를 샀던 과거의 나는 어디로 간 것일까. 이렇게, 등가교환의 법칙은 참으로 준엄하다. 알게 모르게 작동해서 보란 듯이 우리의 삶 전체를 지배하고야 만다. 나는 음악에 대한 순수를 내준 대신, 음악에 대한 직업을 얻었다.
얼마 전, MBC에서 마이클 잭슨 관련 특집을 두 번 방송했다. 한번은 그의 공연 실황이었고, 또 한번은 영결식 녹화방송이었다. 두 방송의 스크립트를 작성하면서 그의 멋진 퍼포먼스에 또 다시 감탄했고, 영결식을 보면서는 남세스럽게 눈물까지 흘릴 뻔했다. 특히 영결식이 압권이었다. 처음 마이클 잭슨의 관이 등장했을 때 합창단이 불렀던 흑인 영가, 어셔(Usher)가 노래했던 ‘Gone Too Soon’,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가 선사한 ‘Never Dreamed You'd Leave In Summer’와 ‘They Won't Go When I Go.’ 모든 곡 하나하나가 내 마음을 흠뻑 적셨다.
그 중에서도 흑인 합창단의 가스펠이 단연 최고였다. 일이 다 끝나고, 시간을 두고 가사 하나하나를 곱씹어보니, 왜 그 노래를 선곡했는지 의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제목은 ‘Soon And Very Soon’이다.
“곧, 정말로 곧, 우리는 바다로 갈 것이네. 왕이 계신 그 곳으로. 눈물을 흘릴 필요도, 슬퍼할 필요도 없지. 우리 모두 그곳에서 곧 만날 거니까.”
노예 생활을 하며 흘렸던 흑인들의 고된 땀방울, The King Of Pop의 때 이른 죽음, 사자(死者)를 떠나보내는 남겨진 자들의 슬픔. 더럽혀짐을 알고 있으면서도 끝끝내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자들의 견딜 수 없음. 그 모든 결정체들이 이 노래 속에 녹아있었다.
못 보신 분들을 위해 팁을 전하며 이 글을 마친다. ‘유튜브’(Youtube)에서 ‘Michael Jackson Soon And Very Soon’이라고 치면 동영상을 볼 수 있으니, 꼭 한번 검색해보기 바란다. 진실한 음악이 주는 감동을 정말 오랜만에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