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라고 뺨 때리는 <킹콩을 들다>
한국 스포츠 영화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은 우리 영화계에 ‘배우 자원이 참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아무리 영화라 해도 뭔가 모르게 어설픈 배우들의 동작은 우리가 스포츠 영화에 기대할 수 있는 움직임의 미학이라는, 가장 중요한 미덕을 접어 놓고 보게 만든다.
지난해 초 흥행에 성공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일부 배우들(특히 김정은!)이 그랬고, 지난 주말 개봉한 <킹콩을 들다>도 마찬가지였다. 여전히 ‘간지’가 나지 않는다. 특히 주연을 맡은 조안의 몸은 역도 선수라고 보기엔 지나치게 말랐다. 그래서 그 얇디 얇은 팔로 130킬로그램이 넘는 바벨을 들어 올리는 장면이 순 ‘뻥’으로만 보이는 것이다. 게다가 바벨을 내려 놓는 찰나의 움직임은 그녀가 연기를 하고 있음을 만천하에 알린다. 한마디로 세밀한 관찰을 토대로 디테일한 동작을 연구하지 못한 결과다.
애쓴 흔적은 역력했지만, 애썼다고 다는 아니다. 관객들에게 배우 조안이 아닌 역도선수 '영자'를 보여줘야 하는 건 그의 몫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온전히 특정 배우만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겠지만, 우리나라의 주연급 배우들 태반이 캐릭터에 자신의 몸과 영혼을 짜맞추는, 이른바 ‘메소드 연기’ 방법론에 익숙하지 못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런 약점은 동작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스포츠나 무협영화에서 너무 쉽게 드러난다.
스포츠 영화로서의 리얼리티가 부족한 것 말고도, 사실 <킹콩을 들다>의 최대 약점은 따로 있다. 한마디로, 이야기의 흐름이 지나치게 단선적이라 것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걸 내세우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각본의 상투성이 자동 상쇄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영화는 어느 고아 소녀의 인간 승리라는, 매우 익숙한 플롯 위에 메달리스트 출신 역도 코치와 학생들의 유사 가족애적인 관계를 설정해 놓고 막판 감동의 순간을 향해 맹렬하게 달려간다. 여기까지는 좋다. 문제는, 주인공들을 시련에 빠뜨리는 과정의 작위성이 지나쳐 감동의 순간마저 작위적으로 보이게끔 만든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영화속 그 악독한 코치처럼, 눈물을 나게 하기 위해 뺨을 후려 갈기는 셈이다. 이런 걸 흔히 신파, 또는 억지 감동이라고들 부른다.
제작진은 최대한 단순하게 가자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주인공들의 사연이 더욱 눈물겹게 보일 수 있도록, 이들을 시기하고 음해하는 적들을 요소요소에 배치하자, 설령 이 과정에서 앞뒤가 좀 안맞고 뚝뚝 건너 뛰는 한이 있더라도, 어쨌든 이것은 대중 영화이므로 관객들이 눈물샘을 자극 받았다면 만족감을 느낄 것이 분명하다, 뭐 이런 계산이었을 것 같다. 실제로 나는 후반부에 몰아치는 신파 장면의 초입에 눈물이 났다. 내 주변의 관객들도 눈시울을 붉히는 걸로 봐선 그 계산은 어느 정도 성공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킹콩을 들다>가, 말 그대로 ‘성공한’ 영화라는 얘기는 아니다. 나는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들의 사연에 감동해서 눈물이 난 게 아니라 시청각적인 자극에 생리학적으로 반응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끝내 이 영화를 여운이 길게 남는 ‘좋은 영화’라고 말 할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