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섭 영진위원장의 퇴진을 바라보며
강한섭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이 결국 낙마했다. 표면적으로는 사표 수리의 형식이지만, 기획재정부의 해임 건의를 문화체육관광부가 받아들인 결과다. 이로써 그는 지난해 5월 4기 영화진흥위원회의 수장으로 취임한 뒤 1년 2개월여만에 자신의 본업인 교수로 돌아오게 됐다.
감지되는 영화계 일각의 반응은 ‘당혹’이다. 그동안 영진위 수장이 한 번도 기관장 평가를 통해, 그러니까 정치적인 이유가 아닌, 그야말로 ‘실적 부진’으로 인해 중도 하차한 사례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포스트 강한섭’ 체제에 대한 정체 모를 불안이 드리우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강한섭 위원장은 취임 직후부터 영화계 내에 여러 논란의 중심에 서 왔다. 충무로 주류 세력을 “얼치기 진보주의자”라고 불러 비난을 자초했으며, "한국영화 공황" 발언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독립영화 지원 정책을 바꾸려고 한 탓에, 베를린 영화제 출장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 독립영화인들이 장관과 직접 만나 성토하는 ‘왕따’를 당하기도 했다. ‘잘 나가던’ 예술영화 전용관 문제를 사실상 백지화한 장본인으로 찍혔으며, 지난 4월에는 영진위 계약직 직원들의 계약 해지 문제를 놓고 갈등하던 노조의 퇴진 요구를 받기도 했다.
좀 심한 표현인지 모르겠으나, 강한섭 위원장은 임기 1년도 안돼 충무로의 ‘공적’이 돼있었다. 어딜 가도 그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씨네 21 등 영화 언론들의 맹포화가 이어졌다. 한마디로, 사면초가였다.
이렇게 온갖 비난의 대상이었던 그가 퇴임하는 마당이니 쾌재를 불러 마땅할 일인데, 왜 영화계에는 불안의 그늘이 드리우고 있는 것일까. 당장 4기 영진위에 구제불능 진단을 내는 데 인색하지 않았던 씨네 21의 논조에 미묘한 변화가 감지된다.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니냐는 목소리들이 터져 나온다.
우선 그가 퇴임하는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다. 중장기적인 호흡으로 이어가야 할 문화 정책을 단기적 경영 실적으로 판단하려는 기획재정부의 평가 방식이 한마디로 ‘어이 없다’는 평가다. 이렇게 되면, 현 정부 아래에선 앞으로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은 일년마다 한 번씩 세 번은 더 바뀔 것이라는 자조 섞인 냉소도 들린다.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써야 하는 일을 하는 영화진흥위원회가 정부의 경영 기조를 따를 수 있는 여지는 크지 않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강한섭 위원장의 퇴임 이후, 정부의 영화 진흥 정책의 기조가 바뀌지 않겠냐는 불안이다. 실제로 정부 일각에선 영화진흥위원회를 지난 5월 출범한 한국컨텐츠진흥원으로 통합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심심찮게 흘러 나오고 있는 마당이다. 지금은 괴담 수준으로 떠돌고는 있지만, 만약 이것이 현실화된다면, 차기 위원장은 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파견된, 일종의 ‘터미네이터’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는 그래서 설득력있게 들린다. 벌써부터, 차기 위원장은 관료 출신일 수 있으며, 적어도 영화계 출신은 아닐 것이라는 성급한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극단적으로 전망한다면, 영화진흥위원회가 공중분해되고, 영화 진흥 정책은 종합적인 컨텐츠 진흥 차원의 한 분야로 축소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당장 수 천 억원에 달하는 영화 발전기금의 향방도 오리무중이 될 수 있다. 이것이 너무 먼 얘기라면, 당장 차기 위원장은 적어도 전임 위원장이 노조 관리 실적에서 낙제점을 받아 퇴임한 것을 복차지계로 삼을 게 뻔하다.
이번주 씨네 21의 관련 기사는 “그동안 노조가 위원장의 퇴진을 요구한 적은 없었다”는 영진위 노조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놓았다. 기사를 쓴 기자가 정확하게 인용한 게 맞다면, 이 얘기는 틀렸다. 노조는 분명 지난 3월 강한섭 위원장과 김병재 사무국장의 퇴진을 요구했었다. 때맞춰 영화계 몇 개 단체가 성명을 내 지원 사격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당시는 정부의 기관장 평가를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다. 오비이락일 수도 있겠지만, 시점의 미묘함을 감안한다면, 이것을 영진위 안팎이 공조한, ‘강한섭 몰아내기’ 막판 대작전으로 해석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노조와 영화계 일각이 그를 비판하거나 퇴진을 요구한 게 무조건 잘못됐다는 얘기는 아니다. 잘못이 있다면 따져 묻는 게 지당하다. 문제는, 전략의 부재다. MB 정부 하에서의 영화 정책의 향방과 역학 관계 등을 충분히 고려한 싸움이었냐를 묻는다면, 나는 고개를 흔쾌히 끄덕일 수 없다.
왜냐하면, 강한섭 위원장에 대한 영화계의 비판에는 정권 교체 상황에 대한 반감과 그를 MB의 영화 쪽 파견사원으로 치부하려는 정서가 작용하고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의 시장주의적 관점과 충무로 주류세력에 대한 날선 독설은, 그런 혐의에 심증을 얹어 놓는 역할을 했다. 그것이 자신에 대한 반감을 확대재생산시켰다는 것을, 그도 모르진 않을 것이다.
강한섭 위원장은 저쪽의 시각에서 한참 우편향돼 있다고 보일 수도 있겠으나, 정권 교체 상황에서의 첫 수장으로 적어도 정부의 입김을 막아낼 영화계의 우군이 될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스크린 독과점 문제에선 오히려 전임 안정숙 위원장보다 진보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와 관련한 2007년 민주노동당의 법안 과정에 협조할만큼의 유연성을 보여줬다. 그런데 그가 현정권의 낙점을 받아 위원장에 취임하자마자 보수의 부역자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이러는 사이, 영화계는 그를 활용하지 못했고, 그도 영화계를 활용하지 못했다. 그리고 끝내 내쳐졌다.
이런 모든 작용과 반작용이 충돌하며 작금의 상황으로 이어졌다. 영화 정책이 실적의 논리에 포획되는 상황 말이다. 반감과 반감의 격돌 사이에서 전략이 끼어들 틈은 없었다. 영화계 공생의 대의가 상기될 여지는 없었다.
강한섭 위원장을 싫어하는 영화계 일각은 결과적으로 얻고자 하는 것을 얻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끝내 통쾌하지는 않을 것이다. 차악이 물러난 자리에 최악이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 지난하고 힘든 싸움은 이제부터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