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세상에는 '상식'의 틀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사랑의 방식이 존재한다. 15살 소년이 엄마 뻘의 여자와 육체적 사랑에 달뜨게 된 일도, 비록 세간의 편견 어린 시선의 대상이 될지언정, 어쨌든 일어났기에 있을 수 있는 일이 된다. 그 신묘한 스파크의 힘을 어찌 세속적 잣대로 설명하거나 단죄할 수 있겠는가.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갑자기 죽도록 몸이 아파진 '마이클'이 하필 그녀 '한나'의 집 앞에서 구토했고, 또 한번 '하필' 그 시간에 퇴근하던 한나가 그를 살펴준 게 발단이었다. 그렇게 해서 보은의 예를 갖추기 위한 마이클의 두번째 방문은 성숙한 여인의 벗은 몸과 우연을 가장한 조우로 이어진다. 첫 사랑의 희열에 몸서리치는 소년과, 낯설지만 아름답고 수줍지만 힘찬 몸을 거부할 수 없게 된 여인의 사랑이 시작된다.
얘기를 이렇게 시작하고 나니,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를 소년과 성숙한 여인간의 '에로틱'한 러브 스토리로만 짐작하실 수 있겠다. 그러나 그게 다는 아니다. 한나는, 사랑을 나누기 전 늘 소년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주문한다. 책을 읽어주는 행위는 두 사람의 정서적 교감을 매개하는 일종의 의식이자 마이클과 한나의 반 세기에 가까운 사랑의 연대기를 펼쳐 보이는 아주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마이클은 뭔가 모를 상처를 지니고 사는 한나를 문학의 세계로 안내하지만, 현실은 끝내 그녀를 야만의 동굴로 안내한다.
사실, 이 영화는 멜로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역사와 개인간의 관계에 대한 꽤 중후하고도 깊이 있는 성찰을 담아낸 정치적 드라마라고도 할 수 있다. 스포일러 혐의를 무릅쓰고 조금 더 나아가 본다면, 역사는 한나를 두 번 배신하고, 사람 그 자체가 아니라 정의와 불의라는 관념의 세계에 휩싸인 마이클도 그 과정의 공범이 된다. 역사가 개인에게 남긴 상처는 끈질기게 유전되고, 그 악순환 속에서 사랑도 쉽게 기만의 대상이 된다. 불행히도 우리의 사랑 역시 역사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영화는 조용하면서도 힘있게 웅변하고 있는 셈이다.
마이클의 시점에서 쓰여진, 독일 작가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원작 소설을 비교적 차분하게 스크린에 옮긴 스티븐 달드리는, 후반부에 이르러 한나의 심리를 드러내는 데도 많은 비중을 할애한다. 그럼으로써 원작으로부터 퍼올린 차가운 안타까움에 관객들이 뜨거운 흐느낌을 얹을 여지를 남긴다. 한 마디 대사보다, 몸과 표정의 언어로 한나를 표현한 케이트 윈슬렛의 연기는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3월 26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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