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제이미 벨의 재발견 '할람 포'

cinemAgora 2008. 4. 24. 13:25

지난번 '까칠한 시선'을 통해 영화계 훈남 배우들을 언급하면서 요 친구를 빼 먹은 게 영 걸리던 차였는데, 최근 시사회를 통해 본 <할람 포>가 그 걸쩍지근한 마음에 '빠방'하고 확인 사살을 한다. "날 빼놓은 건 실수였어"라고 말하듯.

다름 아닌 제이미 벨이다. <빌리 엘리어트>(2000)을 볼 때만해도 쬐간한 녀석이 춤 한번 기가 막히게 잘 춘다 했던 친구였다. 그 사이 불쑥 컸다. 벌써 스물 둘. 소년과 청년 사이, 여전한 '마지널 맨'의 좌충우돌하는 나이인만큼 제이미 벨의 표정과 눈빛도 딱 그만큼이다. 부유하는 청춘의 내핍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듯한 바짝 마른 몸까지.

<할람 포>는 <점퍼>에선 잘 드러나지 않았던 그의 매혹이 제대로 드러난 영화다. 왕성한 성적 충동을 이기지 못하는데다 아빠의 새 여자를 상대로 사고를 치고는 짐짓 어른인 척 정의를 고민하는, 그러나 여전히 엄마의 잔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할람 포'라는 문제적 인간이 이번에 그가 새로 맡은 역할이다. 잘 어울린다.

표면적으로 <할람 포>는 그 문제적 인간의 성장영화이자,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와 관음증에 대한 영화다. 엄마의 죽음 뒤 거의 은둔형 외톨이로 지내며 남의 집 훔쳐보기를 취미로 일삼던 한 녀석이 엄마를 살해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새 엄마를 충동적으로 범한 뒤 집을 뛰쳐나와 무작정 에든버러로 온다. 죽은 엄마를 닮은 여인네를 보고 한 눈에 반해 그녀와 같은 직장에 취직한다. 그리고는 그녀를 훔쳐 보다가 운좋게도 함께 사랑에 빠지는, 뭐 그런 얘기다. 일견 뻔한 스토리다.

아무리 뻔한 스토리라 할지라도 가끔 배우가 누구냐에 따라 색다르게 보일 때가 있다. 제이미 벨을 캐스팅한 이 영화가 그렇다. 게다가 중간 중간 귀를 즐겁게 하는 브릿팝의 쾌감이 끝내주니, 어쩌면 이 영화를 음악 영화의 범주에 넣어도 좋겠다, 싶어진다. 4월 30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