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사는 것과 잘 사는 것
'잘사는 것'과 '잘 사는 것'은 다르다. 말장난 같지만, 자세히 보면 다르다. '잘'과 '사는' 사이에 띄어쓰기가 있고 없고의 차이로 의미가 다르다. 잘사는 건 돈이 많아 풍족하게 사는 것(rich)이고, 잘 사는 것은 말 그대로 잘(well), 제대로 사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대한민국 땅의 잘사는 이들의 태반은 잘 살지 못한다. 가진 걸 잃을까봐 전전긍긍하고, 더 가지고 싶어 눈알을 희번덕거린다. 어떻게 해서라도 세금을 덜 내려고 머리를 굴리고, 스스로의 천박함은 보지 못하면서 없는 이들이 천박하다고 욕을 한다. 너무 많이 가졌거나, 너무 많은 것을 가지려고 하는 욕망은, 사람을 추하게 만든다. 추해지는지도 모른 채 추해진다.
그렇다면 잘 사는 건 도대체 무엇일까? 이런 자문을 할때마다 나는 대학 시절에 선배들이 줄곧 내게 물었던 질문 '잘 살고 있니?' 라는 말을 되뇌인다. 잘 사는 게 도대체 무엇인지 몰랐던, 그래서 모든 게 막연했던 시절이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가 가장 잘 살았던 것 같다. 학교에 갈 차비만 겨우 가지고 다녔고, 점심은 거의 선배나 동기들에게 얻어 먹을만큼 가난했지만, 그때가 가장 잘 살았다.
모든 현상과 사물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내것이 되어 버렸으되 내것이 아니었던 허위 의식을 걸러내려고 몸부림쳤다. 가장 많은 책을 읽었으며 가장 많은 밤들을 지새웠다. 가장 많은 논쟁을 했다. 한마디로 고민이 참 많았다.
고민이 많은 건 잘 사는 게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물론 자기 학대나 내면이 피폐해지는 고민은 스스로를 파괴한다. 그러나 자기를 고양시키려는 변증법적 고민은 차원이 다르다. 의식의 도약과 철학적 성숙. 그 과정을 통과하는 것 자체가 잘 사는 것이다. 낯뜨거운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내가 인격적으로 더 훌륭한 사람이 되는 과정이 잘 사는 것이다.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이 잘 사는 것이다.
앞만 보는 게 아니라 옆과 뒤도 살필 수 있는 넓은 시야를 갖는 것. 내 삶의 사회적 좌표를 가늠하고, 신념대로 행동하는 것. 눈치 보지 않고, 변명하지 않고, 바른 신념대로 바르게 행동하는 것. 내가 틀렸을 수도 있음을 항상 염두에 두는 것.